[연중 제28주간 월요일]요나의 표징 (루카 11,29-32)

2016. 10. 9. 오후 7: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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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월요일]요나의 표징 (루카 11,29-32)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으니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한다.(갈라 4,22-24.26-27.31─5,1)
형제 여러분,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시편 113(112),1ㄴㄷ-2.3-4.5ㄱ과 6-7(◎ 2 참조)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악하다고 하시며,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고 하신다.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하가르의 추방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제1독서(갈라4,22~24.26~27.31~5,1)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5~26)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는'에 해당하는 '하티나'(hatina)'호스티스'(hostis)중성 복수형이며, '호스티스'는 일반적으로 앞에 나온 명사를 받는 관계 대명사 '호스'(hos)와는 달리, 앞에 나온 진술에서 확인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관계 대명사이다. 

여기서 가리키는 '여기에는'(이것들)이란,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가르 및 두 아들과 관련해서 언급한(22,23절)것들을 요약적으로 대변하며, '하티나'(hatina)는 바로 이러한 내용이 지닌 해석학적인 독특한 특성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해석학적인 특성이란 바로 '우의'이다. '비유'에 해당하는 '알레고루메나'(allegorumena)'우의적으로 말하다'(speak allegorically),'우의적으로 해석하다'(interpret allegorically)뜻을 가진 '알레고레오'(allegoreo)현재 분사 수동태'우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의적으로'(allegorically)란 말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교훈 방법이었던 '비유' 곧 '파라볼레'(parabole)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이다. '파라볼레'한 사물이나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거나 연상할수 있는 다른 사물 혹은 사실 예로 들어 서로 비교함으로써, 이해를 돕는 언어의 한 표현 방법이다. 

이와는 달리 '알레그레오'는 어원적으로 '다른' 이란 뜻의 '알로스'(allos)합성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그 사건의 일반적 이해와는 다른 어떤 해석이나 사실을 설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여기서 그 '다른' 해석이나 사실은 그 본래적인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본래적인 사건을 기초로 하면서 그 뒤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과 그 두 아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뒤에 감춰진 현재적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우의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현재적 삶에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학습장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가르치시려고  성경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현재 상황에 적용토록 하기 위해 성경을 주셨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란 표현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오로는 앞서 22절, 23절의 내용이 우의임을 밝힌데 이어서 본문에서는 왜 이것이 우의가 되는지를 말하고 있다.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란 뜻이 있는 '가르'(gar)로 시작된다. 즉 본문은 계집종과 자유인 여자두 계약이란 측면에서 이것이 우의가 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계약은 물론 하느님의 은혜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과(갈라3,16~18)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통하여 모세와 맺은 계약을 가리킨다(갈라3,19). 

그런데 여기서 '두'(dyo; 뒤오)란 표현은 이같은 두 개의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여기서 '뒤오'그 둘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기능을 갖는다. 

표준 원문은 '뒤오'앞에 정관사 '하이'(hai)가 첨가되어 있다. 희랍어에서 '뒤오'가 관사와 함께 사용될 때는 그 둘이 별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마태19,5; 마르10,8; 1코린6,16; 에페5,31). 

본절에서도 표준 원문은 하가르와 사라로 알레고리화되는 이 두 계약이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녔음을 강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관사를 붙였다고 볼 수 있으며, '뒤오' 자체가 이런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 바로 하가르입니다' 

원문으로 볼 때 강조 문장이다.  새 성경은 번역되지 않았으나, '진실로'(마태3,11), '과연'(마태17,11)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멘'(men)이란 불변사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시나이산으로부터 나와서 종살이할 자식을 낳았던 한 계약, 하가르가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본문은 시나이산으로부터 종살이할 자식을 낳은 계집종이 누구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그는 바로 '하가르'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4절 후반절과 25절에서 계집종 하가르를 통하여 율법의 성격을 설명했던 사도 바오로는 이제 본절에서 자유인 사라를 통하여 계약의 성격을 설명한다.  이처럼 본절의 내용이 앞선 내용과 대조된다는 사실은 '그러나'(but)로 번역될 수 있는 접속사 '데'(de)가 잘 보여준다. 

율법과 계약의 차이점'지금의 예루살렘'으로 묘사된 반면, 계약이 본절에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ano yerusalem; 아노 이예루살렘)으로 묘사되고 있고, 25절의 '종살이를 하고'란 표현이 본절에서는 '자유의 몸'이란 표현으로 바뀐데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입니다'란 표현은 하가르와 사라의 신분이 그에 속한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바와같이, 사라로 비유되는 계약에 속한 자 모두가 사라와 같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잘 보여주며, 이것은 갈라티아 교인들도 이러한 축복 가운데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1,29~32)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29.30) 

악한 의도로 표징을 구하는 자들(루카11,16)에게 예수님께서 진정한 표징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내용이 루카 복음 11장 29~36절에 전개된다. 여기서 '세대'로 번역된 '게네아'(genea; generation)혈통 또는 동일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라고 표현하고 있다(마태12,39). 사실 표징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악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이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냈지만,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서도 또 다른 표징을 구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표징만을 구하는 것을 진실된 마음의 결여로 보고, 진실된 마음의 결여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신실함의 상실이기에 이것을 '영적 절개없음'으로 보고 악하다고 질책하신 것이다. 또한 '표징'을 뜻하는 '세메이온'(semeion; a sign)은 여기서 어떤 것을 구별해 주는 기적적인 '증거'(toke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주 궁금해했으며, 예수님께서 마귀의 힘을 빌어서 기적을 베푸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는 것인지 판단하고 식별할 수 있는 '표징'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요구하지만'에 해당하는 '제테이'(zetei; they seek)'발견할 때까지 찾다'를 의미하는 원형 '제테오'(zeteo)현재 직설법으로 쓰여서, 이들이 예수님께서 표징을 보이실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끈질기게 구했다는 사실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신앙의 마음으로 메시야로서의 표징을 구하는 이들에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보일 표징이 없다고 하시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마태오 복음 12장 40절나오듯이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나가 실제로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후에 니네베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감당하여, 그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징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그리스도, 즉 약속된 구원자로서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흘 만의 부활로서 명확하게 입증하겠다는 이다(사도1,3; 17,31).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사건이 메시야되심을 보여 주는 결정적 표징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관점으로 루카 복음 11장 30절을 본다면, 이것은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복음 9장 22절의 첫번째 수난 예고에 이은, 또 하나의 간접적 수난 예고로 볼 수도 있다.



오늘의 복음(마태12.38~42) 요나의 표징


<요나의 표징>송영진 모세 신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라는 말씀은,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너희는 악한 자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또 이 말씀은 안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단순한 말씀이 아니라,
회개해서 구원을 받으라는 호소입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이라는 말씀은,
믿음도 없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 자들이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만 찾아다니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에서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2-23).”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는 유대인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믿음 없는 태도이고,
그리스인들이 지혜를 찾는 것은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가장 놀라운 표징은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바다가 갈라진 일,
또 광야에서 굶주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일 등입니다.
그들은 그런 정도의 일이 일어나야
하늘에서 내려온 표징이라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을 표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라는 말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난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징이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다른 표징은 필요 없습니다.
부활을 안 믿는다면 그 어떤 표징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활을 믿고 회개한다면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요나 예언자처럼 크게 한 번 혼나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요나서를 보면, 요나는 처음에는 하느님을 피해서 달아났습니다(요나 1,3).
하느님께서는 바다에 큰 폭풍이 일게 하셔서
요나가 타고 있는 배를 위험에 빠뜨리셨습니다(요나 1,4).
그래도 요나는 별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요나 1,5).


그랬는데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자기를 삼키자
그때서야 비로소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 당신의 눈앞에서 쫓겨난 이 몸,
이제 제가 어찌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저는 감사 기도와 함께 당신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제가 서원한 것을 지키렵니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요나 2,3-10).”


요나처럼 크게 한 번 혼난 다음에 정신을 차리고 회개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혼나기 전에 먼저 회개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혼나고 나서야 회개하는 것은 미성숙하고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크게 혼이 나도 정신을 차리지 않는 것은 반항, 또는 교만입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라는 말을,
“요나의 선포를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한 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한 것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난 것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 아니라,
니네베가 무너진다는 선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요나 3,3-5).”


여기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라는 말씀은,
“사십 일이 지나도록 회개하지 않으면 니네베는 멸망한다.” 라는 뜻입니다.
요나 자신은 니네베가 그대로 멸망하기를 기대했지만(요나 4,1),
니네베의 멸망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고,
그들의 회개와 구원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요나 3,10;4,11).
(그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악한 세대’를 꾸짖으신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을 회개시켜서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니네베의 멸망이 하느님의 뜻이었다면,
사십 일이라는 유예 기간을 주지 않으시고 곧바로 멸망시키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회개하라고 하느님께서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나의 인생이 끝날지 모릅니다.
모르니까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병자성사를 집전할 때 보면,
잘 준비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이도 있고,
회개하고 보속할 시간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또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고통스럽게 그 순간을 맞이하는 이도 있고,
저쪽 세상으로 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이도 많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심판은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란 무엇일까요? 악한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진노의 선포일까요? 아니면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자비와 사랑의 부르심일까요? 그것은 요나의 모습 속에 잠시 들어가 보면 압니다.
요나는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평하신 하느님답지 못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주님의 명을 거스르고 도망치지만, 풍랑을 만나고, 바다 속에 던져져서 고래 배 속에 사흘간 잠들어 있다가 결국 주님의 뜻대로 니네베로 보내집니다.
요나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내 판단과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면 하느님의 부당함과 그분의 자비가 합당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여전히 잘살고, 양심을 지키는 이들이 무시당하는 불공평한 세상을 그냥 놓아두시는 하느님이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모자란 나를 통해서도 당신 자비와 사랑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을 외면하고, 그분의 계명을 무시하고, 내 욕심대로 살아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곧바로 벌하지 않으십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불편한 윤리 규범이나 신자로서의 의무들이 못마땅할 때에는, 차라리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성당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속 편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우리의 아집을 곧바로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려는 것이었고,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도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한없이 참고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의 넓은 자비와 사랑에 의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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