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2016. 10. 1. 오전 4: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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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간 그녀는 결핵을 앓다가 1897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짧은 기간의 수도 생활이었지만 데레사 수녀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고행하였다.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그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선종한 뒤에 나온 데레사 수녀의 병상 저서들은 세계 각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하게 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은 그녀를 시성하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성녀는 ‘소화(小花) 데레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시고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이 위로하리라고 예언한다.(이사야 66,10-14ㄷ)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 때문에 애도하던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크게 기뻐하여라. 11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1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13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14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리라.


바오로 사도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 그대로 있으라며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1코린 7,25-35)
형제 여러분, 25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2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33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신다.(마태 18,1-5)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제1독서 (이사66,10-14ㄷ)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13.12)

 이사야의 이름 뜻은 '야훼는 구원이시다' 또는 '야훼께서 구원을 주신다'이다. 이사야는 남부 유다 임금 우찌야가 죽던 해(기원전740년)에 예언자 소명을 받았다. 

전반부는 바빌론 유배 훨씬 이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과 신탁을 반영하는 제1 이사야서(1~39장), 후반부는 유배 시대에 나온 신탁과 예언을 포함하는 제2 이사야서(40~55장) 유배 후 시대의 신탁과 예언을 포함하는 제3 이사야서(56~66장)으로 나뉜다. 

제3 이사야서로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남부 유다 백성의 상황 겨냥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사야서 1장에서 언급된 이사야서 전체의 중심 주제, 구원의 보편주의 재천명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당신께 충실한 남은 자들을 구원할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시온 또는 예루살렘이 참다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다.

세째, 하느님의 심판은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경계를 넘어 모든 민족에게 미칠 것이다.

네째,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장된다. 

그리고 제3 이사야서에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느님을 남성적 표상 뿐 아니라 여성적 표상으로도 표현한다(용사와 해산하는 여인; 42,13~14/ 아버지와 여인; 45,10 / 주님과 젖먹이를 가진 여인; 49,14-15/ 주님과 자식을 위로하는 어머니; 66,13).

오늘 소화 데레사 대축일에 이사야 에언서가 채택된 것은 소화 데레사가 오늘 독서 이사야 예언서 66장 12~13절에서 완덕의 길, 성인되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언제나 성인이 되기를 갈망해 왔다. 그러나 성인들과 나를 비교할 때, 내가 분명히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과 나 사이에는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산봉우리와  발 밑에 밟히는 눈에 띄지도 않는 모래알과도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대신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크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불완전함을 가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하늘로 가는 작고도 아주 새로운 길을 찾겠다. 완덕이라는 힘든 계단을 올라가기에는 내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나를 예수님께 올려다 줄 승강기를 찾고 싶다.' 

 그래서 나는 성서에서 내가 원했던 것들을 찾아 냈다. 그리고 영원한 지혜의 입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었다.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잠언9,4)   

 <소화 데레사가 읽은 성서는 이 구절이 "네가 만일 아주 작은 자라면, 내게로 오라" 고 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았음을 알고 즉시 그분께 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한 작은 자(어리석은자)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시려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이것이었다.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이사66,13.12) 

 저를 하늘로 올려다 줄 승강기는 예수님, 바로 당신의 팔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더 커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작은 채로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소화 데레사는 한없이 부족하고 어리석고 작은 자신이 구원의 길, 성인의 길, 완덕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생명의 말씀 속에서 지혜의 길을 찾았다. 

그것은 주님께 가는 것이고, 그 다음은 팔과 무릎위에 안기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무상으로 주님께 젖을 얻어 먹을 수 있고, 귀염(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믿음과 신뢰에 찬 소화의 길, 사랑의 길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도 각자 믿음과 영성의 차이가 있지만, 소화 데레사 처럼 절대적 생명의 말씀속에서 완덕과 성인의 길, 쉽고 분명하고 단순한 길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렵고 복잡하신 분이 아니시다. 

나는 유아세례, 첫 고백, 첫 영성체, 견진, 신학교 추천서를 받은 본당이 소화 데레사 성녀가 주보였다. 그리고 사제가 되어 첫 본당 신부로 부임한 본당도 소화 데레사 성녀가 주보이셨다. 나의 성소길에 영육간에 도움을 많이 주는 분들 중에 유독 소화 데레사 본명 가지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내가 한국 땅에 태어나 외국에 처음 나간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90년대 초에 파리에서 유학 중인 동창 신부가 드골 공항에서 어디를 제일 가 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난 스스럼없이 루르드 성모님 성지와 리지외 소화 데레사와 아르스의 비안네 성인 성지라고 대답했다. 

지금도 리지외에서 소화 데레사 생가, 성녀가 다니던 본당, 카르멜 수녀원 부속 성녀 소화 데레사 박물관을 순례하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난다. 

내게도 성녀처럼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나머지는 주님께서 다 채워 주신다는 단순하지만, 전폭적 신뢰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안에도 성녀 소화 데레사 처럼, 교회의 존재 이유요 목적인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과 기도의 지향이 있다.





10월 1일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복음 (마태18,1-5)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0)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의 원형 '호라오'(horao)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다'(요한8,57)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알다', '조심하다', '유의하다'라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두어 유의해서 반드시 지켜야 함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실천적 명령이며, 또한 현재 명령형이기에 희랍어에서 현재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항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kataphromesete;look down; despise)원형 '카타프로네오'(kataphroneo)'업신여기게 되다','가볍게 여기다'(마태6,24), '업신여기다', '멸시하다'(로마2,4)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에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강력한 금지를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5~9절에 뒤따라 나오지만, 내용상 14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10절에서 14절까지의 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14절)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천사들이'에 해당하는 '앙겔로이 아우톤'(anggeloi auton; their angels)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앞서 나온 '작은 이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를 임명해 두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2,15).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라고 계시되어 있다. 

이 천사들의 기능과 역할 및 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지키는 천사가 항상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하느님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은 '작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이들' 예수님께 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잃어버리는'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ould be lost; should perish)원형 '아폴뤼미'(apollymi)돌보는 사물, 혹은 짐승 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잃다'(마태15,24)라는 뜻만이 아니라, 일이 어그러지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망하다'(마태26,52)는 뜻과 그리고 영원한 생명(구원)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멸망하다'(요한3,16)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잃어버리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 품을 떠나 죄의 길에 머물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나타낸다.




<어린이>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


‘회개’는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이라는 말씀은,
“회개하여 어린이가 되지 않으면”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어린이처럼 되다.’ 라는 말을
속은 어른이면서, 또는 속마음으로는 자기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만 어린이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되는 것은 속으로나 겉으로나 완전히 어린이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작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회개해서 어린이가 되는 일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변화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참된 겸손이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겉으로만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 라는 말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면서,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는 이” 라는 뜻입니다.
속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만 낮추는 것은,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낮추다.’ 라는 말은,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는 뜻도 아니고,
높은 사람이지만 낮은 사람인 것처럼 낮춘다는 뜻도 아닙니다.
자기가 본래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하늘나라는 회개해서 어린이가 된 사람만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어린이이고, 모두가 다 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뜻입니다.


시편 작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시편 90,5-6.공동번역).”
인간은 원래 하루살이와 다를 것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하느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은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처럼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여 어린이가 되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누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갈라 6,3).”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교만이고, 하늘나라에서 멀어지는 일입니다.


사탄은 하와를 유혹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5).”
이 말은 사실상 하느님처럼 되라는 유혹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그 열매를 따서 먹은 것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서 먹고 눈이 열렸을 때,
그들은 하느님처럼 되기는커녕 자기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7).”
하와와 아담이 알몸이었다는 것은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뜻하고,
나뭇잎으로 알몸을 가린 것은
자기들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두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기 전에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습니다(창세 3,21).
옷을 만들어서 입을 줄도 모르고 있었던 두 사람의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그들에게 옷을 만들어서 입혀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하느님은 그런 인간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자기가 힘없는 병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회개가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정적인(최종적인) 선고는 아닙니다.
만일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먼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회개한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먼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노력입니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가장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 속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누릴 영광을 선포합니다. 세상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하늘 나라일지도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결혼한 이들이나, 독신을 선택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 살고자 할 때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 걱정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수도원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오롯한 사랑으로 스물다섯이라는 짧은 생애를 불태운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죽음 직전에 믿음의 확신 곁에 도사린 유혹을 다음과 같은 짧은 말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지금 유물론자들의 망령이 나를 엄습합니다.”

세상에 하느님이 없다는 유혹, 평생을 하느님 안에서 살았지만, 하느님 품안에 안길 그 순간에 오직 물질만 있을 뿐이라는 유혹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도 나약한 인간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성녀의 단순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 지극히 단순하고 오롯한 어린이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복잡한 세상에 단순함이 때로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선교는 하느님 사랑에 뿌리를 두고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애덕을 실천할 때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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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마르타와 마리아 (루카10,38-42)16.10.04조회 284[연중 제27주간 월요일(게천절)]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루카 10,25-37)16.10.02조회 401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16.10.01조회 265[연중 제26주간 금요일]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루카 10,13-16)16.09.30조회 350[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루카9,51-56)16.09.27조회 213[연중 제25주간 화요일]예수님의 가족 (루카 8,19-21)16.09.20조회 90[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경 위 등불 (루카 8,16-18)16.09.19조회 90[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루카 8,4-15)16.09.17조회 49[연중 제24주간 금요일]시중드는 여인들 (루카 8,1-3)16.09.15조회 51[한가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루카 12,15-21)16.09.15조회 48[성 십자가 현양 축일]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요한3,13-17)16.09.14조회 50[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울지 마라.” (루카7,11-17)16.09.13조회 50[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 7,1-10)16.09.12조회 49[연중 제23주간 토요일]반석 위에 집 (루카 6,43-49)16.09.10조회 49[연중 제23주간 화요일] 평지로 내려오시어 (루카 6,12-19)16.09.05조회 48[연중 제23주간 월요일]안식일 (루카 6,6-11)16.09.04조회 49[연중 제22주간 토요일]안식일의 주인(루카 6,1-5)16.09.03조회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