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대충 믿기 - 15.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성이 바로 이것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 1장 15절)
회개가 먼저다. 그 다음이 믿음이다. 그 순서를 바꿀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회개를 생략할 수는 없다.
이곳 게시판은 실명으로 활동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얼굴은 물론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신앙 경력도 모두 본인이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한때 논란이 된 '나이 문제'도 이참에 짚어 보자.
어느 회원이 스스로를 60대라고 밝혔다고 치자. 그럼 그게 사실일까? 누가 확인할 수 있을까?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이가 장난을 친 건지 누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와 반대로 스스로를 삼사십대의 장년이라고 소개했다 치자. 그가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또는 이미 넘긴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기 전에 누가 확인할 수 있을까?
신앙?
누군가 개신교로부터 삼십 년 전에 개종해서 가톨릭을 왔다고 했다 치자. 그걸 누가 확인해 줄까? 그가 아직 개신교에 있는지, 아님 아예 그리스도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종교에 속해 있는지 구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이렇듯 사이버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주장'에 대하여는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그 속성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공연한 넘겨 짚기로, 누구는 어른이고 누구는 어린애고, 누구는 신심이 깊고 누구는 사이비고 하는 따위가 다 부질 없는 짓이고, 더 나아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게 있다. 이곳 게시판은 더욱 그렇다.
여기는 글로 대화하는 공간이다.
글쓴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는지는 모른다. 그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글은 남는다. 오로지 그것만이 사실이다.
모든 대화는 올려진 글로 평가를 받아야 하고, 후속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쓰여지지도 않고, 쓰여진 적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지레짐작으로 평가를 하고 후속 대화가 이뤄진다면 그건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나는 이곳에서 무척 다퉜다. 지금도 다투고 있다.
내가 다투는 주제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거짓말...
내가 문제 삼는 거짓말의 근거는 더욱 간단하다. 바로 '글로 남겨진 것'. 즉 사실이다.
만약 그 거짓말이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그게 사실로 확인된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한다. 지금껏 그래 왔다.
문제는 소위 '쌩까기'다.
나는 거짓말을 언급할 때 당사자를 직접 거명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한 오해도 피할 겸, 보다 정확한 답을 구할 겸해서 나는 당사자와 직접 대화를 부탁한다.
지금껏 내 다툼 상대 -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지적한 사람들 -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직접 해명'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나에게든 이곳 게시판 회원 전체에게든...
그냥 쌩깐다.
차라리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다.
쌩까고는
뒤에서 욕한다.
자신의 거짓말 누명은 한번이라도 벗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냥 뒤에서 욕한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무시하고 그냥 욕만 한다.
내가 주장한 '거짓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면 될텐데 말이다.
나처럼 이곳에서 밉보인 놈이 '거짓말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여기 남아날 재간이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약속까지 했다.
내 말이 거짓말이거나, 내가 거짓말이라고 한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단 하나라도' 입증하면 여길 떠나겠다고...
그래도 묵묵부답이다.
그리곤 뒤에서 욕한다.
어떤 마귀도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붓는다.
어떤 양아치도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붓는다.
나는 위에서 회개를 얘기했다.
웃기지도 않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신에게 의탁하는' 따위의 허울은 벗자. 그건 여기서 얘기될 '꺼리'가 아니다.
그냥 양심을 되찾자.
자신의 거짓말을 주워 담자.
자신의 입에서 나온 저주를 주워 담자.
자신의 마음에 담긴 악의와 질투를 삭여 내자.
그런 게 바로 회개다.
그런 다음에야 믿음이다.
믿음만 갖고 있으면
양심이고 나발이고 헌신짝처럼 내팽겨쳐도 된다고 믿는
참된 그리스도인들...
나는 정말 싫다.
나는 그런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역겹다.
믿음 보다 회개가 먼저다.
예수님도 그렇게 외치셨다.
양심을 버리고는 회개도 없고
믿음은 언감생심이다.
예수님도 그걸 바라실 게다.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길 바란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언급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