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여덟 번째를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하나 더 적어야겠다. 아니, 몇 개가 더 나올지 모르니 마지막이란 말은 이제 말자.
예수님 대충 믿기.
적고 보니 그래야 할 것만 같다. 한때는 열심히 믿고 따라야, 그래서 예수쟁이 소리를 들어야만 천국에도 갈 수 있을 것 같고 이 세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열심히 믿고 따라 봤자 어차피 나 건드리는 놈을 만나면 자제도 안 되고, 어차피 나 보다 나은 놈 만나면 시기심만 발동하고, 어차피 안 될 게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 믿는다, 열심이다라고 소문난 사람들을 만났다 치면 어째 하나 같이 속이 보이든지...
차라리 그럴 거라면 대충 믿고, 대충 사는 게 훨씬 낫겠다는 거다.
예수님의 명령은 무지 간단하다. 613갠가 하는 율법이 시시콜콜 하루 일상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유다인들의 율법을 딱 두 개로 정리해서 주신 계명이다. 근데 그게 좀 어렵다. 한번 보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마르코 12, 28-34)
정말 간단하긴 한데 가능하기도 한 걸까?
이 세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 - 가톨릭을 포함해서 정교회, 성공회,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정통(?) 개신교, 중소 개신교단, 사이비를 통틀어 -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신자가 과연 있을까?
왜 어려운가 보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게 어디 가능하겠냐는 거다. 그에 비하면 둘째 계명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까짓 것...
옛날에는 심심찮게 있었던 것 같다.
서슬퍼런 박해시대, 초대교회 시절의 박해나 로마제국 하의 박해나, 가까이는 우리나라 쇄국시대의 박해의 역사를 보면 꽤나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하느님을 놓지 않았으니 가히 예수님의 첫째 계명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어떻게 이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 박해도 없는데... 그걸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지.
목숨을 버리는 건 둘째치고,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단 한 푼의 돈도, 내가 써야 할 단 십분의 시간도,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자존심도 내놓지 못하는데 그 거창한 박해를 따지고, 마음을 따지고, 목숨을 따지고, 힘을 따지겠냐는 거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하느님의 거룩한 기름을 받았다는 사제도 힘에 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루 하루를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우리네 평신자들이야 어찌 감히 꿈이나 꾸겠냐는 거다.
둘째 계명은 그럼 쉬울까? 아닐 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게 가능하다고?
이곳 게시판만이라도 보자. 조금만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는 건 약과다. 있는 능력 없는 능력 죄다 동원해서 상대를 욕하고 할퀴고 아작을 내야 속이 풀린다는 듯 행동하는 일부 사이비들은 빼자. 어차피 이들은 신자도 아니니까.
이들이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돌아서서는 곧바로 '제 탓이오'를 세 번 외치고 '성부 성자 성령을 외치면 눈물로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아무리 보여도 이들은 신자가 아니니 빼자는 거다. 교적에 이름 석 자가 있다고 신자는 아니니...
그럼 그런 쓰레기를 빼고, 아주 정상적인 신자 생활을 하는 이들은 과연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나? 정말? 아닐 게다. 나는 확신한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아마 정상적인 신자들은 대부분 이럴 게 분명하다.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너를 공격하지 않는다'
'나는 소득의 일정부분을 자선단체에 기꺼이 기부한다'
'나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할 용의가 있다' 등등...
근데 문제는 이런 것들은 '비신자'들도 그런다는 거다.
위와 같은 행동이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느냐 '사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느냐의 차이일 뿐 비신자들도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어떤 때에는 비신자들이 더욱 아름답고 더욱 따뜻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 있고...
이곳에 오른 글들을 읽다 보면 참 여러가지를 보게 된다.
각종 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제, 똑같은 사목을 해도 듣는 신자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사제, 공동체에 유익은 커녕 해악만 끼친다는 단체장, 오직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이는 병원, 상조 등의 각종 사업... 나만 보면 해코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본당 신자들... 어디 하나 편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감히 '사랑'을, 그것도 '내 몸처럼'을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아무 일 없는' 게 부러울 뿐이다.
어디 게시판 뿐이랴? 게시판이 이럴 지경인데 회원들이 속한 본당은 천국이란 게 가능할까? 본당이 그럴 지경인데 속한 교구는 천당일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멀쩡하겠냐는 거다.
어차피 예수님의 계명, 613개에서 가장 크고 꼭 지켜야 한다는 두 개의 계명이다.
그걸 지켜야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게다. 나는 포기...
그래서 '대충' 믿기로 했다.
예수님 대충 믿기.
적고 보니 그래야 할 것만 같다. 한때는 열심히 믿고 따라야, 그래서 예수쟁이 소리를 들어야만 천국에도 갈 수 있을 것 같고 이 세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열심히 믿고 따라 봤자 어차피 나 건드리는 놈을 만나면 자제도 안 되고, 어차피 나 보다 나은 놈 만나면 시기심만 발동하고, 어차피 안 될 게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 믿는다, 열심이다라고 소문난 사람들을 만났다 치면 어째 하나 같이 속이 보이든지...
차라리 그럴 거라면 대충 믿고, 대충 사는 게 훨씬 낫겠다는 거다.
예수님의 명령은 무지 간단하다. 613갠가 하는 율법이 시시콜콜 하루 일상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유다인들의 율법을 딱 두 개로 정리해서 주신 계명이다. 근데 그게 좀 어렵다. 한번 보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마르코 12, 28-34)
정말 간단하긴 한데 가능하기도 한 걸까?
이 세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 - 가톨릭을 포함해서 정교회, 성공회,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정통(?) 개신교, 중소 개신교단, 사이비를 통틀어 -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신자가 과연 있을까?
왜 어려운가 보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게 어디 가능하겠냐는 거다. 그에 비하면 둘째 계명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까짓 것...
옛날에는 심심찮게 있었던 것 같다.
서슬퍼런 박해시대, 초대교회 시절의 박해나 로마제국 하의 박해나, 가까이는 우리나라 쇄국시대의 박해의 역사를 보면 꽤나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하느님을 놓지 않았으니 가히 예수님의 첫째 계명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어떻게 이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 박해도 없는데... 그걸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지.
목숨을 버리는 건 둘째치고,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단 한 푼의 돈도, 내가 써야 할 단 십분의 시간도,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자존심도 내놓지 못하는데 그 거창한 박해를 따지고, 마음을 따지고, 목숨을 따지고, 힘을 따지겠냐는 거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하느님의 거룩한 기름을 받았다는 사제도 힘에 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루 하루를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우리네 평신자들이야 어찌 감히 꿈이나 꾸겠냐는 거다.
둘째 계명은 그럼 쉬울까? 아닐 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게 가능하다고?
이곳 게시판만이라도 보자. 조금만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는 건 약과다. 있는 능력 없는 능력 죄다 동원해서 상대를 욕하고 할퀴고 아작을 내야 속이 풀린다는 듯 행동하는 일부 사이비들은 빼자. 어차피 이들은 신자도 아니니까.
이들이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돌아서서는 곧바로 '제 탓이오'를 세 번 외치고 '성부 성자 성령을 외치면 눈물로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아무리 보여도 이들은 신자가 아니니 빼자는 거다. 교적에 이름 석 자가 있다고 신자는 아니니...
그럼 그런 쓰레기를 빼고, 아주 정상적인 신자 생활을 하는 이들은 과연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나? 정말? 아닐 게다. 나는 확신한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아마 정상적인 신자들은 대부분 이럴 게 분명하다.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너를 공격하지 않는다'
'나는 소득의 일정부분을 자선단체에 기꺼이 기부한다'
'나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할 용의가 있다' 등등...
근데 문제는 이런 것들은 '비신자'들도 그런다는 거다.
위와 같은 행동이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느냐 '사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느냐의 차이일 뿐 비신자들도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어떤 때에는 비신자들이 더욱 아름답고 더욱 따뜻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 있고...
이곳에 오른 글들을 읽다 보면 참 여러가지를 보게 된다.
각종 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제, 똑같은 사목을 해도 듣는 신자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사제, 공동체에 유익은 커녕 해악만 끼친다는 단체장, 오직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이는 병원, 상조 등의 각종 사업... 나만 보면 해코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본당 신자들... 어디 하나 편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감히 '사랑'을, 그것도 '내 몸처럼'을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아무 일 없는' 게 부러울 뿐이다.
어디 게시판 뿐이랴? 게시판이 이럴 지경인데 회원들이 속한 본당은 천국이란 게 가능할까? 본당이 그럴 지경인데 속한 교구는 천당일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멀쩡하겠냐는 거다.
어차피 예수님의 계명, 613개에서 가장 크고 꼭 지켜야 한다는 두 개의 계명이다.
그걸 지켜야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게다. 나는 포기...
그래서 '대충'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