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대충 믿기 - 10. 그 실례 하나, 어느 비신자의 상스러움...

2012. 10. 3. 오전 9: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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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대충 믿기 - 10. 그 실례 하나, 어느 비신자의 상스러움...

어제 아홉 번째 '대충 믿기' 시리즈를 올리고 반가운 후배와 양꼬치를 먹으러 나갔다가 메뉴에서 개구리 구이가 있길래 몇 점 구워먹었는데 생각 보다 맛이 별로였다.

전에 모 부페에서 먹었던 황소개구리 뒷다리 맛을 기억하고 시켰는데 웬걸 그 크기가 옛날 동네 실개천에서 잡아다 닭 모이로 주던 우리나라 토종 개구리 만한 크기에 살도 없고 그저 비릿하기만 한 것. 공짜가 아니라 꾸역꾸역 먹긴 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작년까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던 한 여인이 돌아왔다.

느닷없이 - 이 또한 어쩌면 느닷없이가 아니라 누굴 겨냥했을지도 모르지만 - 미사 중에 스님이 웬말이냐며 침을 튀기며 신앙의 정수를 외치던 여인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글들을 싸그리 모아다 휴지통에 버리는 추태를 보이더니 급기야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또 피를 빨려고 스멀스멀 다가왔다.


자기 조카 보다 어리면 말을 까도 된다나?

여기가 어디 청계천 시구문 밑이라도 되나? 나이가 어리면 반말을 까고, 나이가 위면 무조건 공대를 해야 하는 곳이던가? 그런 돼먹지 못한 짓거리를 공개적인 곳에서 함부로 싸지르고 다니면서 무슨 신앙이고 미사고 나발이고를 떠들고 있느냐는 거다.


자고로 양반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사회가 바뀌어 양반 상놈을 가르는 제도는 없어졌지만 그 속에서 살아있는 '양반상'은 아직 없어진 게 아니다. 현대사회의 상놈은 그 행동과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안녕하십니까'로 인사하다가 오늘 아침에 만나서는 '어이, 잘 잤나'로 말을 건네면 그게 바로 상놈의 짓이라는 거다. 신앙이든 행동이든 양반의 행동거지가 따로 있고 상놈의 짓이 따로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한 일 년 보이지 않기에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지, 혹시 요즘 부쩍 늘었다는 치매에 걸리셔서 힘든 생활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며칠 전 비록 허튼 말이지만 글쓰기도 아직 치매기를 보이지 않길래 참 다행이다 했는데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이니 역시 일 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긴 한가 보다.


역시 예수님을 깊이 믿으면 사람을 버리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릇도 되지 못하면서 함부로 신자입네를 떠들고 다니는 걸 보면 예수님 믿기라는 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내가 이미 지적한 대로 '신자도 아니니' 별 탈이야 있겠냐마는 그 행동을 보면 역시 '대충 믿기'가 상책인 건 맞나 보다. 그 실례를 오늘 아침 만났다. 신자도 아닌 신자의 상스러움을 통해서 말이다.


그 여인에게 전에 전해 준 말이 있다. 나는 왜 만날 재탕만 해야 하는지 그놈의 팔자가 세기도 하다.


 
[굿자게 국어 공부] - 7. '너나들이' 예법도 양반과 상놈이 달라...
 
작성자   문경준(kjmunn02)  쪽지 번  호   138239
 
작성일   2009-07-28 오후 1:14:45 조회수   171 추천수   
 
어느 할머니가 내게 말을 놓자고 한다.... 그것도 너/나로 하잔다.
(사실 이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인지 확실치도 않다. 그저 자기 입으로 그랬을 뿐 언제 민증을 깐 적도 본인의 얼굴을 내민 적도 없다. 어쩌면 말 뿐인 할머니일 수도 있다. 글쓰는 폼도 그렇고... 어쩌면 나보다 수 해나 아래인 불혹도 넘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순의 나이에 가까워지면 그 행동이나 언변에 무게가 실리는 법인데 전혀 그러질 못하다. 아무에게나 너나들이를 들이대는 걸 보면 말이다. 그것도 치사하게 말이다.)
 
뜻밖의 일.
 
지긋지긋하게도 내 뒤를 따라다니며 뒤통수 치기를 하는 탓에 가능하면 상종하지 않으려 했는데, 기어이 친구 먹자고 한다. 고민은 고민이다.
 
일단 관리자에게 허락을 받은 다음에나 받아들일지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자고로 우리네 옛 어른들은 서로 낯을 익히게 되면서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 그제야 말을 놓곤 했는데, 그게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의 격식을 차렸단다.
 
 
돼먹지 못한 상놈들이야 다짜고짜 너니 나니 했나 본데...
나름 양반을 자처하던 이들은 그렇지 않았단다.
 
 
지금은 나가봐야 하니 오후 늦게나 아님 밤 늦게 그 내용을 소개할까 한다. 내게 말을 까는 할머니도 항상 그러더라.
 
 
아마 내가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자기 스스로가 양반인지 아닌지는 금발 알 수 있을 게다.
 
 
그럼 이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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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시간이 나는군.  계속해 보자.
 
옛날 우리네 선조들은, 특히 스스로를 양반입네 하던 이들은 함부로 상대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더라.
 
일단 통성명 후에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어 이 정도라면 서로 친구로 삼아도 되겠다싶을 때에야 비로소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야자트기'를 했다는데, 그 순서가 바로 이러하다. 참고삼아 알아 두는 것도 공연히 상놈 소리 듣지 않는 데에 유용할 듯싶다.
 
 
먼저 말을 놓고 싶은 사람이 대충 이렇게 말은 건넨단다.
 
"부족한 제가 감히 말을 섞은지가 꽤 되는군요. 그동안 배운 점이 큽니다. 이제 서로에 대한 예를 갖춘지 오래이니 과히 꺼리시지 않으시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을 놓고 지내고 싶습니다.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말을 놓음세..."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십중팔구는 그에 걸맞는 응대를 해준다. 정히 싫으면야 거절하겠지만 인간사가 어디 그러한가?
 
"제가 오히려 배운 바가 컸습니다. 게다가 저를 동무로 삼아주시겠다니 그저 황망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와 거리낌 없는 사이로 지내고 싶으시다니 저로서야 영광이올시다. 그럼 그 뜻을 받아들여 이제부터 나도 말을 놓겠네..."
 
상황에 따라 변화야 무쌍하겠지만 이상과 같은 것이 대략 우리네 양반 선조들이 서로에게 말을 놓는 방법이란다.
 
 
양반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걸 따질 이유가 없었겠다.
 
그냥 아무나 보고, 특히 자기보다 좀 어려보인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말을 깐다. 그 따위 '너나들이'는 옆에서 보기에도 상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여인네의 입에서 나오는 '너'니 '네'니 하는 것은 추하기까지 하다.
 
 
오늘 아침에 어느 할머니가 갑자기 나랑 친구를 먹잔다. 속 마음이야 어디 그러했을까? 그저 내 이름 석자만 보이면 할퀴고 뒤통수 칠 일이 없을까 노심초사하는 여인이기에...
 
다행히도 관리자가 둘 사이의 너나들이를 허락지 않고 글을 삭제했다. 아쉽고도 떨떠름한 느낌... 아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서로에게 말을 까면서 말이다.
 
 
아쉬운 것은,
 
이 할머니가 내게 위와 같은 방법을 취해줬더라면 나는 이 할머니의 족보를 굳이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그 가문의 소중함을 느꼈을텐데...
 
아쉽게도 그러질 못하겠다. 아마 본인이 생각해도 그럴 가치가 없었나 보지.
 
나이가 들어도 어디가서 '본데 없는 자식'소리는 듣지 말자는 게 내 신조다. 나 스스로가 그런 부류의 사람을 무척 혐오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가 그러면 너무 꼴불견이 아닐까?
 
양반 상놈의 구별이 진작에 퇴물이 되어버린 21세기에 불현듯 '왜 옛날에 양반과 상놈을 구별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게 꽤나 사람을 알아보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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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김에 우리말 공부 하나 더 하고 마치자.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온다. 전에 한번 올린 적도 있고...
 
너나들이 :
 
[명사]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 ≒이여().               

너나들이하다 :

[동사]『(…)』{‘…’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너나들이.

문경준의 관련글 보기

[굿자게 국어 공부] - 4. 우리말 '너나들이'와 외국어의 '당신'
 
작성자   문경준(kjmunn02)  쪽지 번  호   137350
 
작성일   2009-07-07 오전 11:20:19 조회수   110 추천수   7
 
 
우리말에 '너나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나들이 : [명사]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 ≒이여(爾汝).
너나들이하다 : [동사]『(…)』{‘…’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너나들이.
 
시쳇말로 '야자 튼다'나 '야자 깐다' 정도가 될까요?
 
우리네 관계에서 이렇게 너나들이할 수 있는 관계는 아마도 '동갑내기'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우리 막내놈도 선생님의 도움(?)으로 여섯 살 동생들에게 '형님' 소리를 듣고 있는데다, 저 자신도 아주 옛날이지만 석 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사촌(형?)에게 반말을 했다가 삼촌에게 혼쭐이 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렇듯 우리말에서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은 굉장히 까다롭기도 하고 또한 굉장히 엄격하기도 합니다. 말법이 엄격한 게 아니라 그 속의 '정서'가 엄격한 탓이겠지요. 특히 '호칭'은 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며칠 째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당신'을 놓고 굿자게를 지저분하게 하고 있는 건 잘 압니다. 조만간 그치겠지요. 지쳐서이기도 하고 물려서이기도 할 겁니다. 조만간...
 
이것만 한 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흔히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에는 존칭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그냥 '당신'이라고 하면 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상대에 대한 호칭에 있어서 영어 보다 좀 더 구별을 두는 언어가 바로 '불어(프랑스어)'입니다.
 
영어의  you에 해당하는 단어로 'tu(발음 : 뛰)'와 'vous(발음 : 부)' 두가지가 씌입니다.  tu는 2인칭 단수로 흔히 우리말의 '너/네'에 해당하며, vous는 2인칭 복수로 쓰여 '너희(들)/너네(들)'로 쓰이지만 여기에는 '존칭으로서의 2인치 단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말의 '당신'에 해당합니다. 독일어도 마찬가지라지요? <du/Sie> 관계 정도로 보시면 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서양과 우리 한국의 차이입니다. 정말 엄청나지요.
 
'상대를 tu(너/네)로 호칭한다'는 동사는 'tutoyer(뛰뚜와이예)'라고 하고, 'vous(당신)으로 부른다'를 'vousvoyer(부부와이예)'라고 한다네요.
 
언뜻 보면 이 '뛰뚜와이예'는 우리말로 위에 있는 '너나들이하다'나 '야자 트다' 정도로 봐도 무방하겠다 싶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놈의 tu가 우리네 '너/네'와 다른 점은 바로 가족간에는 그 나이를 따지지 않고 온통 tu로 호칭한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가요? 큰일날 소리죠.
 
그래서 번역이 어려운 겁니다.
 
Grand-maman, tu es tres belle!이란 말이 있습니다.
위의 상식만 가지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할머니, 당신은 정말 아름다우세요!' 시쳇말로 '직역'이지요. 점수를 매기면 몇 점일까요? 저라면 빵점입니다. 
 
정상적인 직역은 이겁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정말 아름다우세요.' 이게 백점입니다.
 
 
그럼 노인이 처음 만난 숙녀의 미모를 칭찬할 때에는 이렇게 씁니다. Mademoiselle, vous etes tres belle!  
이걸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가씨, 당신은 참 아름다우시군요.''아가씨, 아가씨는 참 아름다우시군요.' 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건 둘 다 백점입니다. 문제가 전혀 없는 완벽한 '직역'이 맞습니다.
 
그러나 불어에도 금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어려도 특별한 인척 관계가 아니라면, 'Mademoiselle, tu es tres belle! '(아가씨, 넌 참 예쁘구나!)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아가씨가 '소녀'라면 좀 모를까...
 
 
이게 바로 서양어와 우리말의 차이입니다.
 
제가 주제 넘게 외국어를 들고나와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말 번역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말은 해당 외국어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그게 우리네 정서고 우리네 말법이지요.
 
특히 '호칭'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예수님과 '함부로' 너나들이'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우리가 '깊은 애정과 존경'을 갖고 있다면, 예수님, 하느님에 대한 '정상적인 호칭'은 '주님' 입니다.
 
 
 
(예수님을 '호칭'으로 쓰는 것도 실은 많은 문제가 있긴 합니다. 말하자면 이는 '(문)경준님'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굳어져서 '예수님'을 부르지만, 원래는 그러면 안됩니다. 정상적인 호칭은 '주님'입니다. 교회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여러번 고민을 했지만, '사목적 배려'와 '관행'으로 그냥 넘어갔다는 문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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