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2022. 10. 17. 오전 9:34:05

글자

사람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정치 판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늘 노심초사하는 정치인들에게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니라고 보는데 소수의 그들만은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국민들을 세뇌 시켜서라도 내 편으로 돌릴 수 있으려니 한다. 만약 그런 오만한 생각을 가졌으면 그들은 당장의 권력을 갖을 수는 있어도 다음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독일에게 대한 태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대량으로 유대인들을 죽인 히틀러의 정부가 전쟁에서 패망하고 민주적인 독일 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들은 한 두 번이 아닌 끊임없이 유대인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그때에 유대인들은 지속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용서해준다.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겠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잊지 않겠다는 말은 지켜보겠다는 말 만큼 상황에 적합한 표현은 없다.


정치에서는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상대방을 탓한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라는 것이 싸우면서 합의하고 그러면서 민생을 위해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면서 결과가 좋을 때는 서로 자신들이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공치사’ 하는 게 그들의 나름의 룰이다. 정말이지 이상한 게임의 규칙을 갖고 있는데 더 특이한 것은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선이고 정의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력의 대부분은 정적을 죽이는 일에 쓰게 된다.


나는 파행으로 얼룩진 정치를 지켜보면서 지금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 생각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성과 상식 그리고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사회적으로 덕망도 있고 나름의 사회적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성과 상식이 무엇인지 정도는 구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매몰되면서 이성과 상식은 사라지고 집단 이기주의에 빠쩌든다. 


경쟁을 하고 있는 상대방이 아무리 밉다 하더라도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엄청난 일을 저지를 만큼 어리석은 정치인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끝에 그 길만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밀어붙이는 것이다. 지금의 혼돈은 그들이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계산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이성에만 의존하는 정치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안정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네가 있음으로써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네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상생의 정치이고 영성의 정치이며 발전의 정치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을 보면 어떤가? 전혀 그런 면을 볼 수가 없고 서로 상대의 탓을 하고 매장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장면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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