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고래와 새우의 싸움

2022. 10. 4. 오후 5: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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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지간인 고래와 새우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외나무다리가 너무 좁아서 동시에 지나갈 수는 없었다. 둘 중 하나는 양보를 해야 하는데 평소에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라고 둘 다 버텼다. 결국 고래와 새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버티다가 둘 다 죽었다. 죽은 후에 해부를 해서 죽은 원인을 규명해 보았더니 고래는 허파가 뒤집혀 죽었고 새우는 간이 부어 죽었다. 경상도 바닷가 마을에서 내려오는 우스개 소리이다. 


양보는 사랑의 최고 기술이자 방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보류하고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따라 주는 것이 양보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되면 양보가 쉽지 않다. 사실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린게 확실하다면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판단이 선이고 상대의 판단이 악이라는게 확실하다면 양보하지 않는게 정석이다. 특히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의 뜻에 맞고 상대의 행동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진리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한다. 이게 바로 순교인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라면 달라진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느님도 옳다고 동의해 주시면 좋겠는데.... 혹시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틀리고 나쁜 것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정반대인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이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오히려 자신의 행동보다 더 옳을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럴 때에는 주저 없이 체면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양보할 수 있는 근거이자 양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의 하느님이 사랑으로 한 분의 하느님이 되신 것처럼, 부부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양보함으로써 일치하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 양보를 통해서 일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양보하는 사랑을 통하여 이웃과 일치하고 하느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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