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린 손자가 휴대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할머니에게 자기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삼촌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한번 외워보라고 했다. “아빠는 3번, 엄마는 2번, 삼촌은 1번이야”라고 하더란다. 할머니는 황당한 마음이 들었지만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번호를 일일이 눌러 보여주며 엄마 아빠의 진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아마도 아이가 단축번호를 이용하여 전화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 할머니는 손주 앞에서는 단축번호대신 일일이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거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나도 온전히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다. 휴대폰을 사용하다 보니 저절로 그리된 것이다. 마약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따로 메모를 해놓지 않는 이상 나의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망가지고 만다. 예전에는 나도 몇 십 개의 전화번호는 쉽게 외워서 어디에서건 동전만 있으면 바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폰을 깜박 잊고 외출했다면 내내 머릿속에서 전화기 생각이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꼼짝 못하는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해 진다.
어디 이런 일이 휴대폰뿐일까? 우리가 편리함을 좇아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일 때마다 이런 일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세탁기를 들어놓음을 따라 손빨래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냉장고를 사용하면서 상온에서 음식물 저장법을 잊어버리고, 자동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다 보니 밥 지을 때 불조절하는 방법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제품들을 사용한 세대들은 아예 중간에 그러한 과정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이처럼 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지만 그 부작용은 심각하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사람들이 첨단 제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무지해진다고 할 수 있다. 기계는 점점 정밀해지고 사용법은 그와 반대로 점점 간단해지니 소비자들로서는 도대체 머리를 쓸 일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자신의 몸과 머리는 점점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똑같은 처지에 있으면 굳이 문제 삼으려하지 않는 게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다.
오히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오로지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 첨단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열심히 돈 버는 일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현대문명의 특징을 ‘돈을 들여 내 몸의 기능을 하나하나 잃어버리는 것’으로 단정하고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살기 위해서 주신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돈 내고 버리는 꼴 같아서 착잡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억울해하기는커녕 하루빨리 버리지 못해 안달이다. 빨리 못 버리면 야만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퇴화된 기능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 기능을 돈 내고 배우느라 난리다.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 태연스레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이것을 문명의 발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편리함을 무기로 돈을 버는 집단들의 속임수에 오늘도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