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던 냉동차에 사람이 갇혔다. 사람이 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냉동실 문을 밖에서 잠근 것이다. 냉동실에 갇힌 사내는 필사적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외쳤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차의 소음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이제 죽을 것이다. 이미 내 몸은 얼어가고 있다. 의식도 희미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사내는 냉동실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펜으로 벽에다 그렇게 끄적거렸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냉동차는 물건을 내리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사내의 싸늘한 시체가 바닥에서 딩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냉동실의 온도가 사람이 얼어 죽을 만큼 낮지도 않는데 사내가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고장난 냉동실 안에서도 사람이 얼어 죽을 수 있다니.....”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하며 혀를 찼다. 그렇다. 그 냉동실은 고장이 나서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사내를 얼어 죽게 만든 것은 치명적으로 낮은 온도 때문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좌절하게 만든 극도의 공포감이었던 것이다.
우리 전래동화인 ‘토끼전’에서 우리는 용궁으로 잡혀간 토끼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죽기 일보 직전에 놓였는데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을 통해 뭔가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우리 속담으로 표현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이거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일 것이다.
냉동실에 갇힌 사내가 막연하게 ‘냉동실 안은 아주 추울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 젖지만 않았던들 사내는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고정관념이 포기를 낳고 사내는 스스로의 체온을 낮춰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스스로를 포기하는 마음이다. ‘자포자기’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아도 소용이 없게 된다.
살다보면 토끼의 꾀가 필요할 때가 있다. 혹여 그런 날이 오면 토끼처럼 자신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