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일을 보냈다. 새로운 신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여전히 설레이면서 떨린다. 사제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도 어쩔 수 없는 느낌이라는게 있다. 내가 새롭게 만나는 신자들은 어떤 분들일까? 그 분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사목을 한다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감사’라는 단어로 결론을 내렸다. 신자들이 존재하니 신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감사’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다. 초기 교회의 가치를 정립해주신 바오로 사도께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 보낸 편지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또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라고 하셨다. 그분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사목하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께 감사하고 신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사제와 교회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들은 매 순간 어떠한 처지에서든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풀어주셨을 때, 누군가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고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셨다. 실상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양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감사를 드렸다. 만약 너무 부족하다고 불평을 했더라면 기적을 없었을 것이다. 실망이나 원망을 거두고 감사해야 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대목이다.
우리들도 살면서 감사의 커트라인을 낮추어야 한다. 감사의 커트라인을 낮추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금이 적게 나오는 단거리를 가는 손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요금이 많이 나올 장거리를 가는 손님에게만 고마워하는 택시 기사가 있다면 그 기사는 하루 종일 편한 마음을 몇 번 갖지 못할 것이다. 비싼 회를 시키는 손님과 회덮밥 시키는 손님을 차별한다면 그 식당 주인은 대부분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감사에서도 욕심을 버려야 한다. 크고 대단한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해야 한다. 자녀가 100점 맞을 때만 감사하다면, 자녀가 99점을 맞아도 감사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자녀가 60점만 맞아도 감사해 한다면 감사할 일이 장말 많아질 것이다. 감사할 점수를 100점이나 90점 이상에 두지 말고 60점, 50점으로 낮춘다면 항상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감사의 커트라인을 낮추면 오늘 아침에 이렇게 눈을 뜨게 해 주시고 하루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할 수 있다. 그리고 저녁에 모든 것을 마치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때도 감사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