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하느님의 사랑

2022. 9. 7. 오전 10:11:18

글자

벌써 토요일이다. 오늘 특전미사를 시작으로 대림동에서 첫 주일미사를 봉헌한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신자들로부터는 존경을 받고 싶다. 

주위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말이나 행동에서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게 행동한다. 신자들을 사목하는 사제는 신자들을 차별 없이 골고루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이 사실을 신부들은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면서 살아가기가 정말로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사제 입장에서는 사랑받을 행동을 하는 신자들, 즉 하느님을 소중히 여기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봉사를 잘하는 신자들이 더 사랑스럽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 못한 신자들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이론상으로는 물론 그분들도 차별없이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내 스스로가 덕이 부족함이라고 생각한다. 간혹가다 미운 행동을 하는 신자들이 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때로는 공동체에 분란을 가져오는 분들이 있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는 분, 쥐꼬리만 한 자존심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신앙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신자들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부부나 가족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사랑을 원만히 이루어지려고 인내하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사랑받게 행동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 하느님과 우리들의 관계이다. 부모는 자식이 사랑받게 행동하지 않아도 자식을 무조건 사랑한다. 부모는 하느님의 사랑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조건 없이 사랑한다 해도 자식이 그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부모 옆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크다. 하느님은 인간이 아무리 잘못을 저지르고 나쁜 짓을 해도 여전히 사랑하신다. 인간이 하느님을 배신하고 미워해도, 하느님께 누명을 씌우고 죽이려 해도, 하느님은 인간 사랑을 멈추지 않으신다. 마치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없으면 못 사실 것처럼 인간을 죽도록 사랑하신다. 그러고보니 가만히 있어도 사랑해 주시는데 애써서 사랑받으려 할 필요가 없다.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선행도, 기도도, 공로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자세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 놓는 일,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거나 차 버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시지만 강제로 베풀어 주시지는 않으신다. 하느님이 아무리 사랑을 주고 싶어 하셔도 우리가 거절한다면 하느님도 어쩔 수 없어하신다. 우리가 매주일마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첨례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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