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날개없는 선풍기

2022. 9. 7. 오전 10:16:25

글자

멀리 외국에서 사목하는 동창신부가 서울교구 인사명령서를 보고는 전화를 해왔다. 그 신부는 멀리 동남아 라오스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 성전건축을 위한 모금을 하기 위해서 잠시 귀국했을 때 잠깐 만나서 저녁 한 끼만 먹었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터라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약간의 용돈과 저녁을 사주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본당생활은 어떤지를 물어오는 동창신부에게 난 잘 지내고 있는데 그곳 생활은 어떠한지 물어보았더니 간지 5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덥고 습한데다 벌레도 많아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하는데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 해달라고 했더니 선풍기를 한 대 사서 보내달라고 한다. 선풍기가 없냐고하니 너무 자주 고장이 나서 제대로 사용하기가 힘들어서 더운데 그냥 지내고 있다면서 국산으로 사서 보내주면 잘 사용할 것 같다고 해서 보내주기로 했다.

 

얼마 전에 선풍기 프로펠러가 자동으로 풀려서 깨졌다고 한다. 확인해 보니 아직 모터는 작동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프로펠러가 오랜 시간 빠른 속도로 돌다가 점점 헐거워져서 빠져 버린 듯하다고 하면서 모든 공산품을 수입하는 나라라서 선풍기 날개가 선풍기 한 대 값이라면서 새로 살 수 있지만 도무지 성능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내고 있었단다.


프로펠러 없는 선풍기! 그 더운 나라에서 낮과 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이 혹시 이런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신앙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기도와 성사 생활이다. 이것은 선풍기의 핵심 부품인 날개와 모터 같아서 날개 없는 선풍기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듯이, 기도와 성사 생활을 제외하고는 결코 우리는 신앙인으로서의 존재를 논할 수 없다. 몇 년 동안 기도와 성사 생활에 참여하지 않는데도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가끔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그들을 교회 밖의 신자로 만들었을까?


기도와 성사 생활이 선풍기의 모터에 해당된다면, 신앙인으로서의 행동은 선풍기의 프로펠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모터와 프로펠러가 잘 돌아가야 선풍기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듯, 우리의 신앙도 기도와 성사 생활을 바탕으로 한 신앙인으로서의 행동이 필요하다. 

프로펠러 없는 선풍기 앞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내고 있을 동창신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 삶과 사목생활도 요즘의 가을바람처럼 신자들을 시원하게 만드는 바람이고 싶다. 땀 흘리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시원하게 만드는 신바람 나는 인생, 신바람 나는 신앙을 만들기 위해서 기도해 본다. 우리의 바람나는 인생! 우리의 바람나는 신앙! 어쩌면 이것이 우리 스승 예수님의 마지막 ‘바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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