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사랑받는 방법

2022. 9. 7. 오전 10: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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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림동 성당에 와서 첫 번째 미사를 봉헌했다. 첫 강론의 내용을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사랑’에 대해서 언급했다. 내가 성당에 부임한 이유를 신자분들에게 말했다. 나는 신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데 강론을 듣고 있는 신자들의 표정이 묘했다. 신자들을 사랑을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받기 위해서 왔다고? 하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말을 너무 습관적으로 해서 오히려 사랑에 대해 무디어져 있고 오해를 하고 있는 많이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어보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변을 하실 것인가? 

없으면 보고 싶고 그리운 것, 무언가 해주고 싶은 것, 도와주는 것, 희생하는 것, 참아주는 것, 이해해 주는 것, 받아 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등으로 답하실 것이다. 공통점은 주로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사랑이라는 것은 주는 것이다. 맞는 대답이다.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인 사랑하는 것을 늘상 보아왔으니 너무 나도 당연한 시각이다. 그러나 맞는 말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빠진 게 있다. 사랑은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받는 것이 동반되어야 완전한 모습을 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을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 


우리가 흔하게 착각하는 게 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랑받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사랑을 주는 것, 특히 미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죽기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랑을 주는 것은 내 의지에 따라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사랑받는 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사실은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남편이 사랑해야 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남편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부인이 사랑받게 행동하지 못했다면 어떨까? 그럴 경우는 무조건적으로 참고 사랑을 준다고 해도 이내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럴 경우는 부인이 사랑받게 행동하지 못했으니까 사랑받지 못한 것이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받게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당에서 신부와 신부들이 갈등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신자들이 본당 신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신자들의 잘못이다. 마땅히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사제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1차적인 책임은 본당 신부에게 있다. 신자들에게 사랑받을 행동을 하지 못한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신부가 열심히 사목하고 신자들을 사랑한다면 신자들이 본당신부를 싫어할 이유가 전혀없기 때문이다. 아니 싫어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첫 강론을 통해서 ‘사랑받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대림동 신자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열심히 사목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만약 내가 신자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면 책임은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어떻게 하는 것이 신자들을 사랑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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