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님이 오셔서 대림역 근처에 있는 시장에 구경을 갔었다. 역시 조선족들이 많아서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중국말이 들린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호떡을 사려고 했는데 상인이 한국말을 못한다. 할 수 없이 손짓과 표정으로 흥정했다. 물건을 사는 내가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손짓을 해야 한다는게 웃겼다. 사실 나에게는 중국인 아들 신부가 4명이나 있다. 난 그들과 함께 살면서도 중국말을 단 한마디도 배우지 않았다. 그들이 한국말을 빨리 배워야 제대로 공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중국말을 배우려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시장에서 호떡을 사먹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배워야 할 것 같다. 내가 대림동 본당 신부인 것이 실감이 났다.
조선족들은 우리의 동포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많이 배우지 못해서 그리고 갖은 게 별로 없어서, 한국에서 천한 일에 종사를 한다고 그들을 무시한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들을 무시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 능력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많이 배운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들, 힘이 있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이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을까? 대답은 ‘절대 아니다.’ 한때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고 재벌, 잘나가던 정치인, 청소년의 우상인 연애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셨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세상에는 편안히 있는 곳이 많지 않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는 편안하게 있을 곳이 많다고 하니 정말이지 큰 힘이 된다. 세상에서는 돈이 많아도 아는 게 많아도 똑똑해도 행복하지 못한데, 하느님의 집에만 가면 가진 게 없고 아는 게 없어도 대접받고 사랑받으며 지낼 곳이 많다니,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의지할 곳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기에 성당은 사회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도 오면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는 가진 게 적고 아는 게 적고 힘이 없다고 무시당하지만, 성당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존중받고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성당에 와서 까지 차별 받고 상처를 받는다면 말이 되겠는가? 오히려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받는 곳이 바로 우리 성당 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대림동 성당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꿈꾸셨던 그런 신앙 공동체를 함께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