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열심한 자매가 상점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계산대 앞에 서 계셨다. 그 여인은 깜짝 놀라며 어찌 된 일인지 여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팔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대답하셨다. 여인은 순간 자기가 원하는 최고의 것을 사아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평화’, ‘사랑’, ‘행복과 자유’, 그리고 ‘지혜’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열매는 팔지 않고 씨앗만 팔고 있는데, 그러니 네가 씨앗을 사갖고 가서 열매를 잘 맺도록 하여라.”
우리는 주님에게 많은 것을 청하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우리의 노력 없이 결과만을 청할 때도 많다. 하느님은 우리의 청원을 완성된 결과를 주시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씨앗의 형태로 우리 마음의 밭에 뿌려주신다. 물고기를 청하면 물고기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주시고 평화를 청하면 평화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씨앗을 주신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씨앗을 우리 마음의 밭에 심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우리의 몫으로 남겨주시고 계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잘 안 들어 주신다고 푸념을 하곤 한다.
주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신다. 천둥 번개와 벼락을 통해서 죄인들에게 회개의 씨앗을 뿌리시고, 고통받는 이웃을 통해서 사랑의 씨앗을 뿌려 주시기도 한다. 우리가 세례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등 각종 성사를 받을 때 주님은 당신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심어 주셨다.
주님은 사제들의 강론을 통해서도 우리 마음의 밭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계신다. 훈화나 강의 때, 특히 미사 강론 중에 하느님은 우리에게 씨앗을 심어 주신다. 그런데 똑같은 강론을 들어도 신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강론을 들어도 어떤 신자들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고 생활에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노력을 하지만 어떤 신자들은 강론을 듣는둥 마는둥 하거나 ‘소 귀에 경 읽기’정도로 무심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그런 분들 마음 속에는 ‘신부님이 뭐라고 강론을 하더라도 나는 내 방식의 삶을 살아가겠다’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 일 것이다.
하느님이 사제를 통해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이런 신자들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똑같이 피정을 하고, 똑같은 강의를 듣고, 똑같이 기도를 하고, 똑같은 훈화를 듣더라도 같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신자들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어떤 신자는 풍성한 열매를 얻는다. 그것은 씨앗을 내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열매의 결과 차이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마음의 밭은 어떤 상태인가? 길바닥이나 돌밭, 혹은 가시덤불처럼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은 아닐까? 하느님은 내 마음의 밭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셨는데 내가 평화롭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밭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