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청문회는 그야말로 내로남불, 이중 잣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국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할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제야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평생을 기재부에서 일한 사람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건이나 복지 쪽하고는 무관한 일을 한 사람을 생뚱맞게 임명한 뜻을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 할 수 없다.
청문회라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너무나도 이상하고 그저그런 인물들이 공천되어서 청문회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회에서도 마찬 가지이다. 전 정권에서 위장 전입으로 낙마시키더니 자신들의 정권에서는 위장 전입이 관례였다고 하면서 사과 한 마디 없이 통과시킨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로 잰 것이다. 이중 잣대라는 말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이중 잣대는 부도덕한 것이다.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하는 이중 잣대야말로 하느님의 잣대가 아니라 가장 이기적인 인간의 잣대이다. 그러고 보면 이중 잣대의 모습을 담은 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중 잣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들을 소개해본다.
“내가 이성을 사귀면 로맨스고, 남이 사귀면 불륜이다.
남이 차를 천천히 몰면 소심 운전이고, 내가 천천히 몰면 안전 운전이다.
남의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공처가이고, 내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애처가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아들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자기주장이 뚜렷해서다.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일은 줏대가 없는 일이다.
남이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고, 내가 술자리에 자주 가는 것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웃을 자기의 잣대로, 세상의 잣대로 판단한다면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받아들일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의 잣대로 잰다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의 잣대로 볼 때는 죽이고 싶도록 미운 남편이 하느님의 잣대로 보면 더없이 사랑스러운 남편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의 잣대로 볼 때는 한없이 얄미운 이웃도 하느님의 잣대로 보면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 그게 하느님의 법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