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지난 여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엄청 내릴 때 한 형제님이 나에게 말했다. “신부님! 죄 지은게 엄청 많은데, 벼락을 맞으면 지옥가나요?” 사람들은 벼락 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지은 죄를 떠올리면서 두려운 마음을 갖고 동시에 용서받기를 청한다. 그러고 보면 번개와 천둥은 사제들의 강론보다 훌륭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는 용서받기를 바라지만 흉악범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못된 놈들은 꼭 벌 받기를 원하다. 특히 살인 사건 등 흉측한 죄를 저지르는 죄인이 TV에 나오면 그런 놈들을 잡아가지 않는다고 하느님을 원망하곤 한다.
마태오 복음 13장에 나와 있는 가라지의 비유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다. 농부가 밀밭에 난 잡초 가라지를 뽑으려 하니까 주인이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한다. 그 드러난 이유는 잡초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까 봐 그런다는 것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하느님은 죄인을 즉각 처벌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일 것이다.
만일 하느님이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즉각 벌을 내리신다면 그 흉악범들은 당연히 벌써 벼락 맞아 죽었겠지만 늘 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느님이 죄인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살려 두는 것은 그들이 이뻐서가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만일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벼락을 내려 처벌한다면 그들이 구원을 못 받기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참회할 기회를 주려고 기다려 주시는 것이다. 잡초인 가라지는 기다린다고 해서 밀로 변할 수는 없지만, 잡초 같은 죄인은 기다려 주면 회개를 통해서 밀 같은 의인으로 변할 수 있다.
하느님은 죄인인 우리를 벌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려 주셨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앞으로는 얼마나 더 기다려 주실까? 그동안 수천 번, 수십 년간 기다려 주셨고 앞으로도 기다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다. 아니, 하느님은 기다려 주셔도 사람이 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그러했으니, 이제 나와 이웃과의 관계도 그러해야 한다. 하느님이 나의 죄를 즉각 처벌하지 않고 참고 기다려 주셨으니 나도 주변 사람들의 잘못을 참고 기다려한다. 우리네 인생에서 당장 뽑아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게 아내 일수도 남편이나 자식 일수도 있다. 그러나 쓸모없는 잡초 가라지를 뽑아 버리지 않고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처럼, 죄인을 당장 벌하시지 않고 기다리는 하느님처럼 우리들도 보기 싫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일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그들이 회개하고 변화하여 좋은 밀이 되어 돌아오길 기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