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산행

2009. 2. 9. 오전 8:37:02

글자

내일은 토요일, 쉬기로 했는데 왠지 편한 맘도 아니고 어디 훌쩍 떠나볼까 생각이 치민다.

그래 떠나보자. 어디든 가서 후련하게 답답한 심사 좀 달래고 오자.

 

대강 대강 등산 짐을 꾸려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간담?  고속버스를 타고 남해안으로 갈까, 아님 비행기 타고가   한라산엘 올라갔다 올까?

얼핏 관광회사 하는 친구 말이 떠올랐다.

서초구청 앞에 가면 주말엔 어디든 골라타고 등산 갈 수 있다는  얘기를.

 

그러나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버스는 몇대 없었다.

 지리산 일박삼일 종주가 있는데 너무 벅차고 , 한참을 기다리는데

설악산  종주라고 쓴 버스가 오길래 애라 모르겠다 그냥 잡아 탔다.

 

새벽 세시에 오색에 도착하고 바로 대청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막히게 가파른 돌길이 이어졌다. 뭉쳐서 같이 온 분들과 떨어져 나는 혼자 걸었다.

손전등에 의지한 깜깜한  밤길 산행이 두시간쯤 되어 , 미끄러워 아이젠을 차고 두시간 더걸어

대청봉에 올랐다.

와 눈보라가 드세다. 눈 앞이 안보인다. 눈물 콧물이 연신 솟고 목덜미가 엄청 시리다.

날라가 버릴 것만 같다.

 

바위를 등대고 바람을 피했다.

한결 견딜만 하다.   아래로 내려다 보니 거무스런 긴  산자락과 바람에 사납게  부댇기는 나무숲, 또 그아래

속초시 위 하늘과    희미한 도시  불빛이 보인다. 바다는 안개에 가려  보이질 않고.

머리를 들어 하늘를 보니  와- 별들이 초롱초롱하게 손에 잡힐듯 가득 열려 있다.

북두칠성,북극성,무슨 자리라고 하는 별들이 반짝반짝 머리위에  찬연하게 빛난다..

어릴 적 여름밤 시골 바깥 마당에서 아버지 멍석 만들고, 옆에서 모깃불 피워 놓고 누워서 바라보았던

그 순박한 넓디 넓은 휘황찬란한 별밭이 펼쳐져 있었다.

 

산장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바로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갔다.

바람은 좀 잦아졌으나 사방이 춥고 시리다. 어서 내려갔음 하는 맘부터 들었다.

한참을 내려 오니 길은 직하강이고 아이젠을 찼어도 미끄러워 애를 먹고 있는데

살펴 보니 썰매탄 흔적이 있다. 망서림도 없이 그냥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럼으로 내려가는데

 이처럼 신나고 빠른 산행이 있겠는가 싶었다. 엉덩이에 불날 뻔 했다.

 

그러나 천불동 계곡은 참 길고도 길었다.

처음 와 본게 아니건만 지루하고 지쳐간다. 계곡의 오묘함과 기암괴석의 신비로움 도 지쳤다.

눈이 일미터 이상 쌓여 있고 속으로 눈이 녹아 콸콸콸 소리치며 돌틈새고 흐르는데

텅빈 계곡이 시끄러울만큼 큰  계곡 물소리다. 겨울 가뭄으로 애먹는 지역에 이 물길을  끌어다 대주고 싶었다.

네 시간 넘게 걸어서 빙판길 천불동 계곡을 벗어났다.

막걸리 한 사발에 감자전을 만원에 달게 먹고, 속초 시내로 나가 목욕을 했다.

 

시계를 보니 돌아가는 버스 시간에 세 시간이나 남았다.

 동명항으로 갔다. 불경기 치고는 제법 사람들이 붐볐다.

방파제 곁에 횟집타운이 2층으로 말끔히 지어 있고, 횟감 파는 가게가 다닥다닥 모여 있다.

혼자 먹을 거 가재미가 싸다길래 세꼬시감으로 만원어칠 사서  2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시끄러웠다.   마침 바닷쪽으로 빈 자리가 있어  앉아 생생한 가자미를 아작아작  소주 한병에

오붓하게 기울이고 있는데, 옆에 아저씨가 혼자 술 드는 게 안되 보였는지 말을 건넨다.

서로 술잔을 나누었다.

 

방파제엔 사람이 많아 한참을 걸어 바닷가로 향했다.

겨울  바다라는데 포근하기만하다. 아까 새벽 여섯시에 대청봉에서 만난 무서운 눈바람의 기억이

언젯 적 일인가 싶다.

파도는 고요히 모래 기슭을 오르락 거린다.

고기 잡는 배들을 평화로이 보호해 주며 오늘도 잔잔히 지구 위에서  출렁인다.

 

돌아오는 머릿속이 많이 말끔해 졌다.

까짓 것 느긋이 길고 크게 보기로 했다.

술 기운에 잠이들어 금새 서초구청 앞에 도착했다.

껌껌한 눈길과 드센 눈바람과 지루한 계곡길을 벌써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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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2010년 2월 28일 오전 1:04

    좋은 산행 하시고 바람 잘 쐬고 오셨슴니다 .쉽지않은 결정인데 대청봉 으로 천불동 계곡으로 또한 겨울 바다 까지 보고 오셨다니 ,용감 하심니다.잘 하셨슴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