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처와 나는 같이 동해안을 갔다.
년초에 어디 시원하게 바람도 쐬고 이리저리 답답한 심사도 달래볼겸
아침 일찍 서둘러 묵호항으로 향했다.
이른 시각이라선지 길이 안막히고 날은 매섭게 추웠지만 세 시간도 안되어
옥계 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탁 트인 망상 앞바다를 대하니 참말로 시원했다.
긴 해안선을 따라 흰 거품을 물고 파도가 치는 풍경은 역시 동해가 으뜸이었다.
대진항에 우선 차를 멈추고 방파제로 나가 가까이서 바라보니
파도는 우리 키 두어길 넘게 거세게 부서지며 울부짓다싶이 거칠었다.
조용한 날 같았으면 방파제에서 핫꽁치 잡는 낚시꾼이라도 있으련만
아무도 안보이고 주차장에 차 대여섯대만 보인다.
철부지 두 애들이 끌어 안고 뛰어다니고 ,파도치는 물결에 낚시를 던지는 사람이
한 명이 있고, 긴 모래 뱃사장에 전부 열명이 안되었다.
날이 워낙 차고 바람이 사나워 파도 구경을 오래 볼 수 없었다.
근데 왠 중년, 쉰댓쯤 보이는 남자가 바닷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잠바를 두텁게 입고 있는데 , 연신 왔다갔다하면서
발로 모래를 긁어 보기도 하고 차보기도 한다.
한참을 걸어서 저 편으로 갔다가 이내 돌아와 다시 발로 모래를 긁고 찬다.
우린 아침을 걸르고 왔으므로 바로 서둘러 묵호항으로,단골집 태길네로 갔다.
요즘 며칠 파도가 심해 고기가 없단다. 그러니 밀복하고 처음보는 달고기를
네마리 주며 얼른가서 회로 들란다. 달고기란 건 처음 보는데 모양이 둥그런
바가지 닮아 허연 낮달같이 은빛이 빛났다.
역시 복어회는 일품이다. 차지고 쫄깃쫄깃하니 혀에 착 붙는다. 12월 중순부터
1월말까지만 난다. 껍질과 머리 뼈는 무를 넣고 지리로 먹으면 시원하다.
집사람이 운전해 준다기에 소주 한병을 겯들여 달고기 회맛을 처음 보았다.
갈치맛하고 비슷한 게 단단하고 고소하다. 오늘도 본전은 건진 셈이다.
바로 돌아오긴 아쉽고 소주 기운도 알딸딸하여 바닷가에 차를 세워놓고,
거친 파도와 망망 대해를 감상하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잠을 깨니 한 시간은 넉넉히 잔 거 같다. 막히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기로 하고
화장실을 아예 보고가자고 대진항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근데 왠 일인가 ?
우리가 회먹고 다시 온 시간이 세 시간도 넘었는데 그 남자가 아직도
뱃사장 그 자리에 서있는 게 아니가 !. 얼마나 시린 날인데 여적까지 서성대고 있단 말인가 !
발길로 모랠 비비고 차고 한참을 저쪽으로 가다 돌아오고 .....
날이 저무는데 주차장엔 짚차 한대만 덩그러니 서 있다.
무슨 사정이 있을까 ?
이 추운 겨울 바다에 혼자와서 얼마를 오랫동안 서성이고 있었을까 ?
날이 저물어 바람이 드세지고 파도는 사납고 시장도 할텐데 , 식구들은
저 가장이 이 시간 바닷가에 나와 떨며 괴로워하는 걸 알고 있을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고개 숙이고 불안한 몸짓으로 모래를 차고 긁고 있는 것을.
매서운 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울부짓는 겨울바다에서 서성이는 남자
이 어려운 시절에 누구의 모습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