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겨울이라고 제법 쌀쌀하다만 바람이 잠잠하니 별로 춥지 않다.
가끔 매서운 날이 있지만 근래 겨울은 사실 많이 따듯해졌다.
지금이 겨울 한가운데인데 이 정도면 푸근한 거 아닌가 !
옛날 육칠십년대 겨울은 정말 엄청 시렸다.
사방천지에 겨우내 눈이 쌓여 녹은 적이 없었다.
눈 치는 건 기쁨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아침 나절 하루 종일 치워 놓고 나면 저녁이면 또 퍼붇는 눈,
그저 어서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시오릿길 중학교 다닐때 얼마나 추웠으면 각자 짚단 하나씩을 들고 가다가
불을 놓아 언 몸을 녹여가며 학교를 다녔을까?
겨울 되면 벌판 눈구덩이에 빠져 ,눈바람에 홀려 동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벌판에 눈보라 휘몰아칠땐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었다.
앞이 안보이고 몸은 휘청거리고 바람에 눈이 몰려 길과 구덩이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렵사리 집에 들어서면 언 손을 잡아 아랫목 이불속으로 녛어 주시던
할머니, 그 이불 속에서 따스한 온기로 나를 기다려준 밥그릇이 만져졌었다.
애들은 그래도 언덕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진지놀이라고 멀리서 참나무로 진지를 두패로 나누어 정해 놓고 뛰어 다니며
진지 뺏기를 하던 시합인데 하루가 어찌 가는 줄모르고 오후 내내 뒷동산에서 놀았다.
그러다 지쳐서 수북한 갈잎더미에 누워서 금새 잠이 들었다가 볼에 와닿는 차가움에 눈뜨면
어느새 함박눈이 흠벅지게 쏟아지고 있었다.
좀 크고 나선 토끼 사냥을 다녔다.
토끼 다니는 길에 전선줄로 올무를 놓고 토끼를 몰아 잡는 방식인데
눈이 많이 쌓인 날엔 토끼가 눈에 발이 묻혀 뛰질 못하면 몽둥이로 때려 잡기도 했다.
아! 두서 시간만에 서너 마리를 잡아 작대기에 메고 내려오면 ,동네 사람들이
우 모여와 부러워하는 기색에 뻥쳐가며 으시대던 사내애들의 호기어린 무용담......
시뻘건 장국물에 가마솥에 끓여서 동네 잔치를 벌렸다.
삶에 지쳐서, 세상사에 열정이 시들해져서, 집에 들어가다가
차를 세워 놓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에 문득 눈을 기다려 본다.
바람도 잦고 하늘이 시무룩하고 공기도 포근한 게 곧 눈이 내릴 것 같다.
삭막한 도시 시멘트 세상에 하얀 눈이, 그것도 흠벅지게 함박 눈이 훨훨 날렸으면
답답한 가슴도 뻥 뚫리고 도시도 오랫만에 제법 운치가 넘칠 거 같다.
반가움 차 오르네.
이렇게 눈 내리면
어릴 적 두고 온 뒷동산 생각나네.
참나무 마른 가지인 채로
눈발 속에 쓸쓸히 서 있겠지.
강아지처럼 못가를 뛰어 다니던
애들 얼굴은 바뀌였지만
갈잎 쌓인 데는 여전히 누워 편히 잠들만큼
푹신한 감촉이겠거늘
오늘처럼 포근히 눈 내리는 저녁 어스름에는
시장 어귀 포장마차에서
얼큰히 한잔 취해보고 싶네.
눈발에 취했는지 옛일에 취했는지
고향 언덕에 잠시 등 기대인듯이.
본인의 졸시 "눈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