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의 말씀을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열심히 사는 훌륭한 한 친구에게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조금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과 친해지면 하느님과 멀어진다는 역설적인 가르침은, 세상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선(善)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아주 다르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그 친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도피적이고 염세적인 것 같다는 자신의 선입관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20세기의 중요한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아렌트가 인상적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근본적으로 ‘세계 경멸’(contemptus mundi)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중세가 비록 수많은 정신적 문화적 업적을 이룩하였을지라도 이러한 부정적 세계관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에 대비되는 ‘세계 사랑’(amor mundi)을 옹호합니다.
이렇게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비신자들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그리스도교가 너무 세상의 가치를 비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반론들은 사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현대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세계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올바른 방식의 ‘세계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에 전적으로 속해 있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가능합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상을 더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있되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가운데 자유롭고 올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지 않고 부활 신비의 빛으로 지상의 삶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