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소프트웨어들
이현로(청주교구 관리국장/ 신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
컴퓨터 시대인 요즈음 흔히 듣는 용어들 가운데 하드웨어(Hard-ware)와 소프트웨어(Soft-ware)라는 말이 있다. 하드웨어는 고정된 성격을 띠고 있어 쉽게 변경하거나 개선할 수 없는 구조나 체제를 말하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가 지니고 있는 구조를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그래서 그 자체로 바꾸기가 가능하고 쉬운 주변 장치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는 소프트웨어의 성격과 기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사실은 전례 거행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전례 거행에 소프트웨어가 되는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또 적합하게 이용하는 일이 전례를 더욱 전례답게 할 수 있는 비결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전례 거행에 활용되는 소프트웨어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물론 앞으로 계속 업그레이드(Up-grade)할 것을 기약하면서….
마이크 사용법
마이크 성능이 다소 떨어지거나 또는 발성자의 음성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효과적으로 음향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발성자가 사용할 때마다 마이크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참석자가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무리없이 가장 잘 들을 수 있도록 발성자가 마이크 거리를 적절하게 조절해 주는 일이다. 마이크 거리가 적당하지 않으면 내용을 전달하거나 기억시키는 데 많은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때로 사용자들이 마이크 거리를 잘못 잡아 값비싼 음향 기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때가 많다.
유의할 것은 마이크를 사용할 때 발성자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이중으로 듣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스스로의 입 안에서 공명하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며, 또 하나는 스피커를 통해 들려 오는 소리다. 실제 시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발성자가 듣기에 스스로 내는 소리 크기와 스피커를 통해 들려 오는 소리의 크기가 거의 같도록 마이크 거리를 잡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바람직한 마이크 거리가 발성자의 음색과 음량, 장소의 여건, 청중 수 등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떤 장소에서 마이크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위 원칙을 염두에 두고 처음 몇 마디 해 보면 곧 바로 그 장소에 알맞은 크기의 소리를 얻을 수 있는 마이크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적절한 마이크 거리를 찾아내는 이 연습은 주례자와 해설자, 독서자, 그리고 보편 지향 기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해 두어야 할 것이다.
독서는 느리게, 성가는 빠르게
많은 경우 독서자들이 성서 본문을 읽어 가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대중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독서자들에게 심적 부담을 주어, 결과적으로 독서자들은 ‘빨리 읽어 치우고 내려 가고자’ 하는 심리를 지니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이 정중하면서도 정확히 읽혀지고 들려야 한다는 사실은 머리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성서 본문에는 발음이 곤란한 지명이나 인명, 또 일상 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용어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독서는 반드시 천천히 해야 한다.
독서는 느리게! 독서를 천천히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 있다. 독서하는 사람 자신이 ‘너무 느리게 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속도로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연습을 자주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독서를 하면 듣는 사람들이 독서의 내용을 따르기가 쉽고, 또 그 내용을 마음으로 듣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가는 독서의 경우와 거의 정반대다. 많은 성당에서 성가대가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으면, 전례 대중의 성가 속도가 고무줄처럼 늘어지기 십상이다. 특히 성가대 없이 성가를 부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성가가 근본적으로 찬미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찬미라는 성격은 어느 정도의 빠른 속도를 전제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성가마다 정해진 제 속도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속도가 잘 지켜지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언제나 ‘왜 이렇게 빨리 부르나?’ 할 정도의 속도로 성가를 부르도록 전례 대중을 연습시키는 일이 바람직하겠다.
쉬운 성가로 합시다
아마도 한 해에 쏟아져 나오는 대중 가요의 수가 엄청날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른바 ‘뜨는’ 곡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곡을 ‘뜨게’ 하는 사람이 가수나 작곡가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코 전문가라 할 수 없는 일반 대중이 어느 곡이 ‘떠올라야’ 하는지를 아주 기막히게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성가도 마찬가지다. 성가집에서 애창되는 곡들이 있기 마련이다. 신앙심을 잘 표현해 주거나 잘 이끌어 주는 성가가 어떤 것인지 이미 신자들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곡들은 대부분 부르기에 좋고 쉬운 법이라 억지를 써 가며 가르칠 필요가 별로 없다. 전례 특히 주일 미사 때에는 ‘반드시’ 그러한 곡들로 성가가 선정되어야 한다. 부르기가 어렵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전례 성가로 골라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음악성이 어떻고 전문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이론일 따름이다. 전례가 전문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 진정한 전문가는 일반 대중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또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성가도 마찬가지다. 성가집에서 애창되는 곡들이 있기 마련이다. 신앙심을 잘 표현해 주거나 잘 이끌어 주는 성가가 어떤 것인지 이미 신자들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곡들은 대부분 부르기에 좋고 쉬운 법이라 억지를 써 가며 가르칠 필요가 별로 없다. 전례 특히 주일 미사 때에는 ‘반드시’ 그러한 곡들로 성가가 선정되어야 한다. 부르기가 어렵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전례 성가로 골라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음악성이 어떻고 전문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이론일 따름이다. 전례가 전문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 진정한 전문가는 일반 대중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또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각본대로 하세요
“모두 일어서시겠습니다.” “모두 일어서십니다.” “모두 앉으십니다.” “가톨릭 성가 59번을 부르시겠습니다.” 전례 중 흔히 듣는 해설자의 안내문들이다. 맞는 표현들일까?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했다. 겸손하겠다는 뜻은 가상하지만, 우리 말 어법에 어긋난 잘못된 표현들이다. “모두 일어서십시오.” “모두 앉으십시오.” “가톨릭 성가 59번을 부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옳고 또 그것으로 충분하다. 단순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안내될 때의 전례 분위기와 이런 저런 군더더기가 붙을 때의 전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느쪽이 정중하고 경건할까?
성삼일 예절 등 특별한 전례에서 해설자가 잘못 안내할 때가 가끔 있다. 예를 들어 해설자가 “모두 일어서십시오.”라고 했는데 사실은 계속 앉아 있어야 할 때라 하자. 복잡한 예절을 주례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주례자가 냅다 호통을 친다(오, 그 무례함이여!). 또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례자가 성급한 마음에 해설자의 몫을 가로 챌 때가 있다. 이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례자마저 틀렸을 때다(오, 그 무색함이여!).
성삼일 예절 등 특별한 전례에서 해설자가 잘못 안내할 때가 가끔 있다. 예를 들어 해설자가 “모두 일어서십시오.”라고 했는데 사실은 계속 앉아 있어야 할 때라 하자. 복잡한 예절을 주례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주례자가 냅다 호통을 친다(오, 그 무례함이여!). 또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례자가 성급한 마음에 해설자의 몫을 가로 챌 때가 있다. 이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례자마저 틀렸을 때다(오, 그 무색함이여!).
본당에 있을 때, 성삼일 동안 날마다 전례를 시작하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해설자와 수녀님, 복사 단장을 불러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있다. “틀려도 전례적으로 멋있게 틀리자.” 일어서야 하는데, 모두 앉으라 했다면 앉아 있게 해 두는 것이다. 앉아 있어야 하는 데 일어서라 했다면, 다시 정정하지 말고 한 번 말한 대로 진행해 나가자는 원칙을 강조하는 셈이다. 하느님 앞에 조금 틀렸다고 뭐 그리 큰일날 일인가? 예절상의 순서나 규칙이 다소 틀렸다 해서 인상을 쓰며 바로잡는 일이 도리어 전례의 전체 분위기를 망친다면 과연 그것이 전례 정신에 맞는 것일까?
그렇다고 마구 틀려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정해진 각본대로 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례부원 모임이나 회합을 반드시 정기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어떤 전례든 전례로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각본을 잘 짜고 그 내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나가도록 연출자들이 미리 손발을 잘 맞추자는 것이다. 가끔 본당에서 사목자들이 그 동안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런 사전 모임이나 준비 없이 중요한 전례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마음으로 전례를 시작했으니, 그 전례의 분위기는 ‘다 그렇고 그런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특히 해설자를 위한 안내문들의 표본을 어법과 사정에 맞게 준비해 놓을 것이며, 전례부원 모임 등을 가짐으로써 자주 전례 실무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 그 기회에 준비된 말이나 행동 외에는 해설자나 주례자가 불필요한 설명을 달지 않도록 자주 환기시킬 일이다.
비신자를 위한 배려
전례 역시 하나의 중요한 신앙 고백이다. 교회 역사를 더듬어 보면, 모든 예절이나 기도문(로마 1, 3-4; 필립 2,6-11 등 참조)은 언제나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 사실이 특히 배려되어야 할 때가 바로 비신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전례(대개 미사)를 거행할 때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혼인 미사와 장례 미사 그리고 입교 예식 미사 때라 하겠다.
전례의 집전자나 해설자는 반드시 비신자를 염두에 두고 전례를 거행하고 진행시켜야 할 것이며, 특히 비신자의 참석 가능성이 많은 전례의 해설이나 안내문은 좀더 교육적이고 신앙 선포적이어야 한다. 중요한 부분이 시작되기 전 간단한 해설을 덧붙여 비신자들이 그 뜻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비신자들이 전례 동작 특히 일어서거나 앉는 것, 봉헌 행렬이나 성체 행렬 때문에 당황하지 않도록 적절히 안내해야 한다. 전례적으로 잘못일지 모르겠지만, 혼인 미사 때 신랑 신부 외엔 모든 참석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숙히 앉아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 본 결과, 참석자를 무리하게 일어서고 앉히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전례 분위기가 좋았고 특히 혼인 성사의 집전자인 신랑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데 많은 효과가 있었다. 장례 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상복 차림의 유가족과 친지(그 중에는 비신자가 늘 있기 마련이다.)들이 일어서고 앉을 때 겪는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조용히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도 불경스러운 일일까?
[사목, 1998년 12월호/ CBCK 홈페이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