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론 >
복음 선포자는 절차를 통해 말씀의 봉사직을 수행한다고 약속한 사람은 아니나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겠다고 봉헌한 사람이다.
복음 선포자가 말씀의 봉사를 합당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려면 어떤 마음 자세와 어떤 영성이 필요한가를 살펴본다.
영성(靈性)이란 하느님께 가는 길, 방법이다.
복음화학교의 목표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용서와 인내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주고 죽기까지 한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하느님의 원천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 본 론 >
※ 요한 17, 19 :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이다.
복음 선포자는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예수그리스도의 모범을 닮고 따르는 사람이다.
복음 선포는 거룩한 것이고 거룩하다 것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복음 선포자 자신이 먼저 거룩해져야 듣는 사람이 그 모습을 닮아간다.
예수님도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셨다.
사랑의 사람은 깊은 기도생활에서 시작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은총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1.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로서 가장 필요한 영성은 사랑이다.
사랑은 하느님의 원천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원천적인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준 사랑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파견하시고 성령을 파견하시어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던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협조자인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느님과 예수님을 경험하고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1) 구원의 대상은 인간이므로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자신을 온전히 내놓고 인간을 사랑하셨다.
인간은 보편적인 사랑을 못하고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하느님은 완전한 분이시므로 완전한 사랑을 하실 수 있다.
※ 1 데살 2, 8 :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런 사랑을 복음 선포 자에게 기대하신다. (현대의 복음선교 79항)
2) 흩어져 있는 하느님 자녀들 한데 모으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사도적 사랑을 가져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하느님과 같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보편적 사랑을 갖는 것이 복음 선포자의 영성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 요한 10, 9-15 <나는 착한 목자다>
9 :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10 :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11 :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14 :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교회 선교사명 89항)
3) 청중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나눠 줄 수 있는가.
복음 선포자는 청중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
복음의 가치를 안 다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바쳤다.
우리는 목숨을 바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선은 다해야 한다.
하느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 봉사, 헌신을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희생, 봉사, 헌신을 할 수 없다.
하느님께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도 나눌 줄 모른다면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사랑 다음으로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가.
부모님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이 똑 같지 않으나
부모님의 사랑을 알면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도 복음 선포자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사람이어야 하고 보편적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2. 예수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인격적 만남)를 형성해야 한다.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위해서는 기도생활을 잘 해야 한다.
기도생활 충실히 하지 않는 복음 선포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말씀을 선포하는 봉사자는 기도의 깊은 맛을 느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하느님 중심의 전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체험이 있어야 말씀에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1)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하다.
특히 복음 선포 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의 깊은 만남과 신비적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루하루 계속 쌓여야 되는 것이다.
인생의 연륜도 오랜 경험과 가르침대로 지혜롭게 살 때 쌓이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복음 선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 선포자의 말과 태도가 복음 선포에 반영되고 증거 되는 것이다.
복음 선포자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적인 모습이 동시에 전해져야 한다.
2) 매일의 깊은 기도 안에서 영적 체험을 하고 하느님의 지혜. 하느님의
능력을 얻어 선포해야 그 말씀에 생명력이 있다.
복음 선포자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매일 매일의 만남을 통해서 영혼이 성숙되는 것이다.
영적인 체험이 없으면 말씀의 잡상인 밖에 되지 않는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사랑이 생기지 않고 봉사 할 수가 없다.
쓸데없이 바쁘게 살지 말아야 한다.
나무도 한 곳에 심어 놓고 기다려야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는다.
3) 자신의 평소 생활자체가 복음 선포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는 복음 선포는 강연에 불과하다.
복음 선포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만남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꾸준히 살아야 한다.
평소의 삶이 복음적이지 않으면 좋은 말씀이 나올 수 없다.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이 나는 것이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가 있다.
복음 선포자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 마태 7, 16-20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16 :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4) 청중을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 속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속으로) 이끌 책임이 있다.
복음 선포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가까이 하고 열매 맺게 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이끌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주님의 생각 주님의 뜻의 씨가 자라게 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생활을 충실히 해서 하느님에 대한 생각 하느님의 뜻의 씨가 싹틀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하느님의 신비를 알리고 이끌어주고 복음적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하느님을 만나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3. 기쁜 생활을 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기쁜 소식의 전달자이다.
복음 선포자는 기쁨의 생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행복을 주는 사람, 행복을 파는 사람이어야 한다.
1)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일뿐 아니라 증인이므로 삶 전체에 기쁨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기쁜 소식 (福音 good news)을 전하는 사람은 기뻐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이미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삶 전체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기쁜 소식의 증인이니까 기쁘게 살아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온유하고 밝은 모습으로 기쁜 모습으로 청중을 대해야 한다.
복음 선포자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무엇인가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2) 청중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소시켜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청중은 대부분 많은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오로는 필립비서를 쓸 때 감옥에 있었습니다.
※ 필립 4, 4 :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한다. 기뻐하십시오.
※ 1 데살 5, 16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감사하고 살면 감사 할 일만 생긴다.
불평하고 살면 불평할 일만 생긴다.
복음 선포자는 기쁨의 원리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고통이나 어려움을 해소해주려면 자신도 시련 고통을 터득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갖은 고통과 감옥생활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강조했다.
바오로는 고통 중에서도 기뻤던 것은 하느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관해 전하는 기쁨은 현재 경험되는 기쁨이며 미래에도 전해질 기쁨으로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쁨이다.
복음 선포자는 위로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기쁜 소식의 전달자이고 증인이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복음적 행복의 사람이다.
복음 선포자는 행복을 파는 사람이어야 한다.
복음 선포자는 순교를 각오하는 기쁨이다.
바오로의 기쁨은 설교하는 기쁨, 미래의 순교할 각오를 포함한 기쁨이다.
복음 선포자는 바오로와 같이 기쁨의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제직무와 삶에 관한 교령 22항 (p.568)
기쁨은 명백히 드러내야 함을 강조했다.
※ 필립 1, 18 :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한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이다.
< 결 론 >
복음 선포자의 이상은 소원은 무엇인가.
복음 선포자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려 주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말씀을 통해서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되고 제자의 삶을 살며 말씀을 통해서 구원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복음 선포자가 바라는 소원이다.
복음 선포자는 자신의 설교가 하나의 씨앗이 되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기를 원하면서 전하는 것이다.
* 마침 기도 : 성모송 . 영광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