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간 수요일

2011. 4. 20. 오전 6: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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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51번째 맞이하는 4.19 혁명 기념일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3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책을 통해서, 글을 통해서 4.19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알았습니다. 독재와 억압에 맞서서 자유와 민주를 위해 투쟁을 하였던 혁명이었습니다. 4.19혁명은 그 뒤로 광주 민주화 항쟁, 6.10 시민 항쟁 등으로 계승되었고,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면서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독재자의 강압된 통치 아래에서 폭력과 억압된 사회에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노숙자들,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 개발과 발전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이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작은 골방에서 외로움을 달래는 독거노인들이 있습니다. 무한 경쟁의 학교에서 참된 진리와 참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으로 오셨습니다.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를 대신지고 가시려고 오셨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으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우리가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 안에서 하느님나라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톨릭교회에 가르치는 ‘사회교리’입니다. 지난 사순특강 때, 박정우 신부님께서 가톨릭 사회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강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톨릭사회교리는 크게 4가지가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건강한 이도 병든 이도, 많이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어린이도 노인도 우리는 모두 소중한 인격체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숨을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상, 이념, 지역, 계층’으로 우리는 서로를 무시하거나,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는 ‘공동선’의 가르침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라고 해도,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우리는 ‘공동선’을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환경은 우리만의 이익을 위해서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할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가꾸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 주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보조성의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교회는 가난한 이, 소외된 이, 병든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 병든 이, 배고픈 이, 헐벗은 이에게 해 준 것이 당신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연대성의 원리’입니다. 하늘을 나는 화려한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치를 깨고 나와야 합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고치를 뜯어주면 나비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커다란 대기업이 문어발식으로 작은 기업들이 해야 할 사업까지 독식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기업형 슈퍼가 동네에까지 진출하면 동네의 작은 슈퍼들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부는 대기업의 슈퍼들이 작은 동네에까지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고 바쁘다고 부모가 문제를 풀어주면 아이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파스카의 성삼일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교회 전례의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삼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의 몸가짐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는지 묵상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대사제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 앞에 자신의 양심을, 친구를, 하느님과 함께한 신앙을 팔아넘기는 것을 봅니다.

우리를 재물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비우는 무소유의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댓글 1

  • 2011년 4월 20일 오전 6:47

    거룩한 시간...거룩한 분을 향한... 오늘도 정갈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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