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 미사

2011. 4. 21. 오전 6:15:37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전에 교구에서는 ‘성유축성 미사’가 있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사제서품 50주년을 맞이하는 신부님들을 위한 ‘금경축’ 축하행사가 있었습니다. 50년 동안 사제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오신 신부님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사제직에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자들의 기도가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저도 올해 사제서품 2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리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저 역시 감사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커다란 은총입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교우 분들의 사랑이 저를 오늘까지 있게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성체성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신 희생의 제사입니다. 성체성사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축제의 제사입니다. 성체성사는 우리들 역시 타인을 위해서 우리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라는 속죄의 제사입니다.

구약성서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의 예표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4장 18절에서 우리는 대사제인 ‘멜키체댁’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멜키체댁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며 아브라함을 위하여 축복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사악을 늦은 나이에 얻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람함의 마음을 받아 주셨고, 이사악을 제물로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탈출기 16장에서 모세는 하느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배고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날 필요한 음식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다시 먹어야 하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아니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 구원을 위한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성체성사는 구약의 제사들을 하나로 통합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물을 불로 태우는 ‘번제’입니다. 번제는 통째로 바치는 것입니다. 연기를 하느님께 돌리듯이, 원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번제의 의미는 세상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미련 없이 바치는 것입니다. 주인의 권리를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희생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바치면서 완성되었습니다. 다 내어 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 드립니다.’ 생명,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흠숭, 믿음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은 사탄의 구속에서 되돌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속이 상하게 됩니다. 내 뜻을 고집하기도 하고, 그것은 내가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입니다. 조종하고 싶은, 통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리라.’ 이것은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며, 이것이 죄입니다. 번제에 동참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사랑의 제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들 마음을 봉헌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웃들과 함께 제물을 나누는 ‘친교제’입니다. 일부는 사제의 몫이고, 일부는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제사의 이름은 친교입니다. 이것은 이웃과 함께 하느님 앞에서 같은 제물을 나누면서 이웃과의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일치와 친교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친교가 되어야 합니다. 같은 빵과 같은 빵을 나누어 먹게 하는 이유입니다. 친교를 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 합니다.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용서가 잘 안됩니다. 감실 앞에, 예수님을 만나보면, 우리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난 무엇을 받았는가?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용서했는가? 내가 받은 상처 손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 이웃, 나 자신과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세 번째는 ‘속죄의 제사’입니다. 죄 값에 상응하는 제물을 사는 것입니다. 흠없는 양을 사서 사제는 그 사람을 위해서 제사를 바칩니다. 사제의 손을 통해서 나의 죄가 양에게 들어갑니다. 손을 제물에 놓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의 제사는,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속죄의 제사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지신 것입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위한 사랑의 값을 치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성모님께서는 최초의 감실’이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성체의 여인이며, 최초의 감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성체성사 제정이전에 성체성사의 신앙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하느님에게 몸을 내어드렸습니다. 성모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누구의 손을 통해서 사제의 손을 통해서 그렇습니다. 사제는 마리아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성당에서만 태어나길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태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가난한 이들의 동반자가 된다면 우리의 몸을 빌려 하느님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자비의 하느님이 우리를 통해 탄생하십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협조해야 합니다.


댓글 1

  • 2011년 4월 21일 오전 6:42

    <번제>, 미련없이 바치는 것... 미련이 없어야만 기꺼이 번제할 수 있다는 것. <용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용서가 잘 안된다... 그렇지요, 제가 찾지 못했던 답을 오늘 말씀에서 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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