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캐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예수님의 말씀을 실감나게 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100억이 묻혀있던 ‘마늘 밭’이야기입니다. 100억 정도의 돈이 묻혀있는 밭을 발견했다면 엄청난 기쁨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100억은 못 되도 백만 원만 묻혀있는 밭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 기쁨에 가슴이 뛸 것입니다. 들리는 소식은 그 백억 원은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여 벌어들인 돈이라고 합니다. 밭에 묻혀있던 돈다발은 모두 정부에 의해서 몰수 될 거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은 마늘 밭이 아닐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마음에 많은 보물을 넣어 주셨습니다. 사랑, 인내, 용서, 감사와 같은 보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시편 23장은 우리에게 참된 보물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란 풀밭에 이 몸 뉘여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이끌어 주시네, 나 비록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주님 함께 계시니 나는 두렵지 않네.’ 불법으로 벌어들인 돈, 그래서 밭에 묻어 놓았던 돈은 허망하게도 사라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던 권력도 그 직책을 놓아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쌓아 놓은 업적도 영원한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장례미사 때 ‘시편 23장’을 노래합니다. 나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불가마 속에 던져진 세 사람을 구해 주시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드락, 매삭, 아벳느고’는 세상의 것들을 잡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이 뜻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세 사람을 죽음의 골짜기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교만, 인색, 미색, 분노, 질투, 탐욕, 나태’의 불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일곱 가지 죄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와 같은 죄의 뿌리에서 이끌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많은 업적을 쌓은 사람도,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은 죄의 불길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진리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 하느님 나라는 ‘회개’하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믿는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곳에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의가 드러나는 곳에 있습니다.
두 번째 진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에 있습니다.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진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은 진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은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고, 눈먼 이를 뜨게 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고, 죽은 이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의 표징이 진리입니다.
세 번째는 부활하신 주님이 진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의 문을 열었습니다. 걱정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의 자리에 넣을 수 있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 믿음, 희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진리의 자리에 무엇을 넣을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