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정의와 용서’입니다.
아무리 자원이 많아도, 풍부한 노동력이 있어도 정의와 공정이 실현되지 않으면 양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와 같은 동물의 세계가 됩니다. 권력, 재물, 명예는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져야 합니다. 독점된 권력, 재물, 명예는 부패와 타락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경찰서와 관공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말들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힘이 없기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수산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산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수산나의 억울함을 아시고, 다니엘을 통하여 살려 주셨습니다. 수산나의 이야기는 성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힘없이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사회에는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적성에 있을 때, 매달 변호사 한분이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정의와 공정’을 구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형제가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용서를 하는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5년 동안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생각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공부도 안 되었고, 부모님께도 많은 아픔을 주었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해자는 자신이 했던 행위를 기억도 못하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데, 정작 피해자는 15년 동안 힘들게 지냈습니다. 며칠 전에 가해자를 만났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용서를 하지 않고는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한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조금 손해를 볼지라도, 양심을 따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할 때, 그래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그런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죽음의 골자기를 간다 할지라도, 주님 함께 계시면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나이다. 힘든 시간, 어려운 시간이 닥칠지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충실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굳센 믿음으로 사순시기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