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밤, 주님의 수난을 예고하듯이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오는 중에도 많은 분들이 수난감실에 모여서 성체조배를 하였습니다. 본당 교우들께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니, 주님께서는 덜 외로우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내리는 비는 봄 가뭄에 목말라하는 산과 들에는 생명의 비가 될 것입니다. 산불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하는 많은 나무들에게는 구원의 비가 될 것입니다. 우리 성당 뒷산에 심었던 철쭉과 연산홍, 꽃씨들에게도 희망의 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천으로 피어있는 벚꽃들에게는 이제 꽃잎을 떨구어야 하는 아픔의 비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가난한 이, 아픈 이, 소외된 이, 죄인들에게는 좌절과 절망의 수난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대사제와 바리사이파들에게는 승리를 알리는 수난이요,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어둠의 세력을 이기는 빛의 승리요, 죽음을 넘어 우리를 구원하는 부활의 빛임을 알고 있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부활과 구원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절망의 눈으로 바라보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어둠의 승리요, 삶의 허무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지내면서 성가를 하나 묵상하겠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지난 성지주일에 성가대에서 특송으로 불러주었던 성가입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 비록 죽음의 길,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따라가겠다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적었던 글입니다.
“이젠 다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제자들 시무룩하고 못난 제자들 앞에 당신은 성체성사를 세우셨지요. 십자가의 죽음뿐 아니라 영원히 부서져서 소화되어 버릴 빵으로 당신 전체를 내놓으셨지요? 그토록 못난 당신 제자들이 당신의 하느님이었단 말입니까? 당신을 먹고 사는 지금의 우리들이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라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미사성제 때마다 제단에서 빵이 되어 부서지고 있지요. 그것이 세상구원의 양식이 된다는 게 당신의 뜻과 아버지의 뜻이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린 한 번도 몸이 부셔져 본 일이 없습니다. 당신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일도 없고 당신의 빵처럼 찢겨져 남에게 먹히운 일은 더구나 없습니다. 당신의 슬픔과 아픔이 우리 것으로 옮겨온 일도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형제들의 발을 씻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은 아시지요. 당신이 이미 하셨기 때문에 시키는군요. 그러나 예수님! 그건 여전히 너무 어려운 일로만 느껴진답니다. 그건 당신의 십자가에 함께 매달리는 아픔이랍니다.
예수님!
우리도 당신처럼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당신 뜻이라면, 이 모든 것을 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