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상반된 내용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민족들의 빛으로 세워주실 것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나면 ‘4.27’ 재, 보선 선거가 있습니다. 각 후보들은 ‘민족들의 빛’이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신들이 당선이 되면 혼신을 다해서 봉사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선거 때 후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가 바르고 공정한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런 부정과 불의가 없고, 곧 선진국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압니다. 당선된 후보자는 너무도 쉽게 자신이 공약한 것들을 잊어버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을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폐기하려 하였습니다. 정부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 하려고 하였고, 이는 엄청난 사회적인 논란을 야기하였습니다. 동남권 신 공항 건설에 대한 공약도 국익을 위한 명분으로 백지화 하였습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 당선되기 위해서 우선 ‘空約’을 하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혼인을 할 때, 배우자들은 서로에게 약속을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젊거나 늙거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많은 경우에 깨어지곤 합니다. 성격이 차이가 난다고 말을 하기도 하고, 서로가 조건을 따지고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제가 되면 열심히 기도하고, 겸손하게 봉사하고, 성사를 성실하게 집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된지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처음 먹었던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족들의 빛이 된 이스라엘 백성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는 서로 다른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격 안에, 베드로의 인격 안에 모든 것이 함께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욕심과, 나의 이기심을 먼저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면 우리는 또한 언제나 민족들의 빛,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성삼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하며, 주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주었던 베로니카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