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토요일

2011. 4. 16. 오전 8: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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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북풍’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사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많은 부정과 부패가 있어서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어질 때면 생기는 바람이었습니다. 남쪽의 체제를 교란시키고, 어지럽게 하려는 간첩들을 잡았다는 뉴스였습니다. ‘유학생 간첩단, 대학교수 간첩단, 문학인 간첩단, 노동자 간첩단 등’ 다양한 이름의 간첩들이 잡혔다고 했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대대적으로 간첩들의 조직과 활동사항을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면 사회의 눈과 귀는 모두 간첩단 사건으로 쏠리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지도층의 부정과 비리는 묻히곤 하였습니다. 이런 북풍은 선거철에도 자주 불곤 했습니다. 조작된 간첩단 사건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피를 요구했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고, 가족들은 헤어지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간첩의 가족이란 누명을 쓰며 살아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그분들의 누명이 벗겨지고,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긴 했지만 그들의 삶은 살아 있었어도 산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거짓된 ‘북풍’이 불어도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소년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마을의 주민들처럼 국민들은 무엇인 진실인지 거짓인지 식별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북풍’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불온한 사상을 가진 혁명가라는 누명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따라가면 강대한 로마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몰고 와서 이스라엘을 쓸어버릴 것이라는 소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신성모독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서 한 사람이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을 향한 날카로운 바람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뚜렷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님보다 1000년 먼저 살았고,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성서에서 다윗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면서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다윗은 ‘신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념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치유해 주셨고,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것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 신념은 다윗의 삶에서 다가오는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다윗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골리앗과의 싸움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우리의 신념은 우리가 꿈꾸는 것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좌절과 근심은 우리에게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병들게 합니다.

둘째, 다윗은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을 하던 사람들을 용서하였습니다. 배반하여 도망을 하였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용서를 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용서하였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죽었을 때,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입니다. 신앙은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에게 욕을 하는 사람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다윗은 ‘자비로운 아버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또한 ‘탕자의 비유’에서 방황하는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들의 지난 잘못을 묻지 않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어 주는 아버지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윗은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에게 칼을 들었던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였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습니다. ‘仁者無敵’이라고 합니다.

넷째, 다윗은 하느님께 의지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기를 바라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비록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잘못을 하였지만 뉘우쳤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구하였습니다. 다윗의 통회와 뉘우침이 잘 드러나는 곳은 시편 51장입니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시오니 내 죄를 없이 하소서.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저의 허물을 없애 주시고,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소서. 죽음의 형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제 혀가 당신의 의로움에 환호하리다.’

우리가 다윗처럼, 예수님을 보지 못하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신념을 가지고, 원수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댓글 1

  • 2011년 4월 16일 오후 10:00

    제 삶의 중심이 늘 하느님이시길... 이것 하나 제가 절대 놓지 않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매일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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