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는 기쁨
영문학이 전공인 우리나라 교수 한 사람이 자신의 연구에 꼭 필요한 참고문헌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곧 자기가 찾는 문헌이 영국 박물관내에 있는 국립도서관에 있음을 알고는
그리로 향했다.
그리로 향했다.
도서관 앞에는 ‘대학교수는 도서관 출입이 제한 없이 허용된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이는 곧 일반인에게는 출입제한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대학교수임을 나타내는 신분증이 없었지만 문헌을 얻기 위해 수백 킬로 미터를 날아왔기 때문에 포기 할 수 없었다.
그는 사무원이 자신의 말을 믿어줄까라? 라는 의심을 품은 채 자기 소개를 하고 출입증의 발급을 요청했다.
“증명서나 신분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증명서는 아니라도 대학교수임을 밝히는 무슨 증빙서류라도 가진 게 있습니까?”
계속되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것도 현재로선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엄연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무원은 처음 보는 한국인에게 정중한 자세로 출입증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말만 믿고 출입증을 내준 것에 놀란 그 교수는 출입증을 받고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출입증에는 유효기간이 자그마치 5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출입증에는 유효기간이 자그마치 5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사무원은 교수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것이다.
누구를 믿는다는 것, 더구나 말을 믿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을 믿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뻐한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을 믿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뻐한다.
서로 믿고, 믿어주는 일이 특별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 좋은생각 매거진중에서 –
우리는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는 의심증(?)이라는병(?)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믿음이란 이해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이 제시한 내용이 자기 생각과 다를 때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주장만 계속하다가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퉁명스럽게 ‘너희들끼리 잘해’ 하는식으로 판을 깨는 경우를 봅니다.
사람의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것은 말을 하는것은 적게하고 듣는 것은
그 두 배로 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곧 경청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일반신자와는 무언가다른,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사람이이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것은 말을 하는것은 적게하고 듣는 것은
그 두 배로 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곧 경청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일반신자와는 무언가다른,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사람이이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4월 22일 전 단원 피정을 지도해 주신 박효철신부님의 말씀에서도 육신의병 70%가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고하셨습니다. 마음의병은 탐욕, 분노, 미움, 두려움에서 온다고하셨습니다.
항상 주문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축복해주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주문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축복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이름으로 (ㅇㅇㅇ)를 용서합니다”
“.주님의 거룩하신이름으로 (ㅇㅇㅇ)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나라에 큰 잔치가 벌어진다고도 하셨습니다. 백마리의 양 중 잃은양 한마리는 ‘죄인’ 을의미한다고 합니다. 레지오활동은 바로 잃은양을 하느님 품으로 데려오는 일입니다. 나 자신도 회계하고, 냉담교우도 다시 성당으로 발걸음 할 수 있도록 활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나라에 큰 잔치가 벌어진다고도 하셨습니다. 백마리의 양 중 잃은양 한마리는 ‘죄인’ 을의미한다고 합니다. 레지오활동은 바로 잃은양을 하느님 품으로 데려오는 일입니다. 나 자신도 회계하고, 냉담교우도 다시 성당으로 발걸음 할 수 있도록 활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잘 죽는것이라고 합니다. 잘 죽어야 부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고 우리 모두 은총속에 살다가 부활 할 수 있는 참 삶을 살 수 있도록, 항상 말씀을 품에 앉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