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십자가 / 십자가에 얽힌 이야기, 십자가의 의미
서기 326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에 의해 십자가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골고타 언덕에서 매달리셨던 바로 그 십자가였습니다. 이 십자가를 절름발이 여인이 만졌더니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더구나 두 죄수의 십자가도 명패와 함께 발견되어 이 십자가가 진품임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헬레나 성녀는 아들 황제에게 십자가를 발견한 곳에 성당 신축을 요청했고 성당이 완공되자 그곳에 십자가를 안치했습니다. 이후 십자가 일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동상 머리에 넣었고, 또 다른 일부는 로마의 ‘성 십자가 성당’ 제대에 넣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네 개의 못 가운데 하나는 당시 폭풍을 잠제우기 위해 바다에 던져 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롬바르디아’의 왕관에 꽂았고, 나머지는 ‘트리어’와 ‘밀라노’에 유물로 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역사적으로도 이처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낱 참혹한 사형 틀에 불과했던 십자가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의 도구로 탈바꿈 했던 것입니다. 그 옛날 구리 뱀을 쳐다보던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인 생명만이 주어졌지만(민수 21, 4-9), 이제 신앙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천상 생명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고상을 집안 곳곳에 빠짐없이 모셔 두었다고 해서 구원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십자가를 종교적인 장식물로 취급하거나 마귀를 쫓는 부적과 같이 여겨서도 안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모셔두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든 내용이 그 안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곧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동시에 그로인한 부활과 영생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나 기도할 때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가르침에 ‘아멘!’으로 응답하기 위해서입니다. 각자의 십자가를 주님과 함께 짊어지며 그분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시기와 미움에 사로잡힌 십자가에서 사랑과 용서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슬픔과 고통 중에는 십자가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세속적 욕망이 움틀 때는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며 그것을 끊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그분처럼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구원의 보증이요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 28-30)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예수님의 향기가 스며있어야 합니다.
강도들을 만나 초주검이 되어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도 모른 체 지나쳐버린 사제나 레위인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루카 10, 29-37). 겉으로는 천주교 신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마태 26, 14-16). 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까지 예수님을 조롱한 그런 파렴치한 죄수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루카 23, 39). 우리 레지오 마리애는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단체로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하여 설립된 군대입니다. 또한 레지오의 설립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복음적인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합니다. 수확할 밭의 일꾼인 우리가 일궈낼 보물은 희생 봉사, 겸손, 그리고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구원에 이르는 십자가의 열쇠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