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사는 신앙인이 됩시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 라고 깜짝 놀라거나 큰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재판조차 변변히 받지 못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정말 원통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저렇게 가셔서는 안 될 분인데!’ 그래서 시신만이라도 찾아 그 가엽고 불쌍한 처지를 위로라도 해야겠다 싶어 무덤을 찾습니다. 로마인들이나 유다인 들에게 잡히면 자기 한 몸 멀쩡히 돌아올 기대조차 못하는 처지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는 위험을 감수하고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무덤에 없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사체마저 가져가다니’ 하는 서글픈 마음에 마리아는 눈물에 젖습니다.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요한 20,14)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전에 마리아가 기억하던 그 분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영과 육이 하나가 된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슬픔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리아를 부릅니다. 생전에 마리아와 예수님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교감(交感)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한 가닥 희망의 실마리를, 부활을 통해 다시 깨닫도록 해줍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생전의 ‘스승님’이었던 예수님을 집착하거나 더 이상 잡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17절) 그러자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 이상 스승님으로 부르지 않고 ‘주님’으로 믿게 됩니다. 과거에 인간적인 스승이었던 그분이 이제 주님이 되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 18절)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맞아 어떻게 변화될까? 우리에게 생명을 내주시고 다시 부활하여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주님 앞에 어떻게 새롭게 태어날까? 마리아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 뵈올 수 있는 특별한 감각과 느낌이 있을까? 언제 어디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나고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마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5)라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 안에 마무르는 것,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 중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39) 첫째 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를 실천하는 것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날, 장례미사 때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포도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불에 태워지지 않으려면, 다시 말씀드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려면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마태 18, 21) 하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2) 라고 대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우리 가톨릭은 부활신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니셨으면 가톨릭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을 사는 신앙인이 됩시다. 부활하신 주님, 저희를 새롭게 해주시고 항상 말씀과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