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보지 말고 그 나무를 보라.

2024. 3. 4. 오전 9:46:11

글자

그늘을 보지 말고 그 나무를 보라.

 

아노와 이루라는 동갑네기 젊은이가 같은 상점에 고용되었다. 그들은 같은 임금을 받고 일을 시작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노의 임금은 올랐으나 이루의 임금을 그대로였다.

뭐야, 같이 들어왔는데 왜 아노의 월급만 오른 거지?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네.’

그러던 어느 날, 이루는 출근하자마자 사장에게 가서 불평을 털어 놓았다. 사장은 이루의 불평을 묵묵히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잠시 후 사장이 입을 열었다.

이루군, 지금 당장에 장에 가서 무엇을 파는지 보고 오게나.” 이루는 재빨리 장에 다녀와 사장에게 말했다. “장에서 파는 것은 농부가 끌고 온 감자 한 무더기뿐입니다.” 그러자 사장이 물었다.

얼마나 있던가?” 이루는 다시 장에 다녀온 뒤 대답했다. “전부 열 포대입니다.“

가격은 얼마던가?” 이루는 또다시 장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고 돌아왔다.

그만하면 됐네. , 이제 이쪽 의자에 앉게. 그리고 아노는 어떻게 하는지 잘 보게나.”

사장은 아노를 장에 보내어 무엇을 파는지 보고 오라고 했다. 아노는 재빨리 장에 다녀와 사장에게 보고했다. “지금 농부가 감자 열 포대를 팔고 있습니다.”

아노의 보고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감자의 가격을 말하며 직접 가져온 감자 한 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면 감자를 팔던 농부가 토마토 몇 상자를 싣고 올 거라고 했다.

과연 시간이 지나자 농부가 토마토 상자를 수레에 싣고 나타났다. 아노는 전날 시장에 갔다가 싸고 맛있는 토마토를 발견하자 분명 사장이 사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는 토마토가 너무 잘 팔려서 남은 것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농부더러 오늘 다른 토마토를 가지고 오라고 했던 것이다.

사장은 아노의 말을 듣고서 이루를 돌아보았다. “왜 아노의 임금이 자네보다 많은지 이제야 알겠나?”

나무의 그늘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의 그늘은 태양의 움직임과 방향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길게도, 짧게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나무는 나무 그대로입니다.

저는 아노와 이루의 이야기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노와 이루의 모습은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사장의 판단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 대충대충 살았느냐에 따라 마지막 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심판을 내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선택하실 때도 외모나 그 사람의 직업이나 똑똑함을 보고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성실함을 보고 부르신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부르신 제자는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부였습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입니다.(마르 3, 16-17)

신앙은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겉모습을 보고 부르시지 않으셨고, 제자들 역시 예수님만을 믿고 무조건 따랐듯이 신앙은 남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간혹 교우들 간에 상처를 받고 냉담을 하는 경우를 곧잘 보게 됩니다. 흔히들 상처를 받았다고 하지요.

나무의 그림자만 보지 말고 나무 그 자체를 보았으면 합니다. 나무는 예수님이시고, 나무의 그림자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상처(?)를 받았을 때, 예수님께서 걸으신 고통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중에 계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오히려 용서를 청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23, 34)라고 기도하십니다.

예비신자 교리반 봉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이들은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닮고 싶어 천주교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참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 산다는 것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 27)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봅니다.

댓글 1

  • 2024년 3월 4일 오후 2:23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갚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