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최고의 자리

2018. 10. 26. 오후 4: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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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최고의 자리 /문한림주교/아르핸티나 

연중 29주일, 나해, 20181021(마르코 복음 1035-45절 출세와 섬김)

 

당신을 위한 최고의 자리!!!

앉으시겠습니까?” “축하 드립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이 보여주었던 감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와 요한은 영광스러운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 두 개의 최고 자리를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다른 열 명의 사도들도 역시 같은 자리를 원했기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무엇을 위해 최고의 자리를 원할까요? 영예와 권력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를 깨우칩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 더구나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여기엔 멸시와 고통의 잔을 받으실 것과 끝내 받으실 죽음의 세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권위의 의미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새로움을 가져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권위는 한사람에게 또는 한 단체에 부여하는데 그 까닭은 공동의 선을 위해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선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것을 추구합니다. 다시 말하면, 권위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권위를 갖기 위한 세가지 중요한 요건을 제시하십니다.

첫째, 타인을 위해 선()을 도모하는 봉사입니다.

둘째, 애정을 갖고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봉사를 위해서는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거리감을 둔 봉사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셋째, 섬기는 봉사자는 생각과 감정, 태도와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합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을 설명하기 위해 잘 알려진 왕의 위대함이라는 동화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옛날에 권위 있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에게는 세 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줄까 고민하다 다음과 같이 시험을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각 왕자들에게 왕의 자격을 주어 5년간 작은 마을 하나씩을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첫째 왕자는 자신의 마을이 너무 작다고 생각해 군대를 조직하여 이웃 마을들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왕국을 넓혔습니다.

둘째 왕자는 자신의 마을에 성이 없음을 알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크고 훌륭한 성을 지었습니다.

막내 왕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주력하고 마음을 다해 보살폈습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많은 변화는 없었지만 마을은 소박한 즐거움이 넘치고, 작은 변화에도 사람들은 아주 기뻐했습니다.

5년이 지난 후, 세 명의 왕자는 자신의 마을 주민들과 그들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왕을 찾아갔습니다. 왕은 왕자들의 말보다 주민들의 말을 듣고자 했습니다. 첫째와 둘째 왕자의 주민들은 그동안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반면, 막내 왕자의 주민들은 크고 훌륭한 업적은 아니지만 갖가지 작은 변화 속에서 그들의 삶에 질적 향상을 가져왔으므로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왕은 모든 마을의 주민들에게 개별적으로 물었습니다. 만일 이 세 마을 중에서 5년을 살아야 한다면 어느 곳을 선택하겠습니까?”. 모두가 대답하기를, 평온한 삶과 행복이 있는 셋째 마을을 더욱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리하여 막내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 예화를 통해 통치자의 위대함은 큰 업적이 아니라 섬김과 친밀함 그리고 일관성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애정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권위를 부여하는 세 가지 요건들 너머엔 다른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봉사자의 진정한 사랑이 숨어있습니다. 이 사랑으로 인해, 예수님은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으로 우리를 섬기셨으며 결국, 당신 목숨까지도 인류 구원을 위해 내놓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섬김과 친밀함 그리고 일관성으로 당신이 보여주셨던 행적을 따르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더구나 예수님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의 삶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목숨을 내놓기까지 하셨으니 최고의 권위에 오를 훈련을 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이로써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서의 최고의 선은 일반적인 공동의 선을 초월하는 모든 인류의 구원을 지향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권위를 끊임없이 훈련하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시는 예수님의 새롭고 복된 소식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식들과 함께, 전문인들은 일터에서, 통치자들은 자기 지역에서, 목자들은 자신의 양떼들과 함께 자신의 권위를 단련해야 합니다.

최고 정상의 권위를 누리며 살고 싶습니까?”

이것이 주님께서 당신에게 부여하려고 또 제안하신 최고 정상의 첫째 자리입니다.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아멘!

축하 드립니다!!!”

 

우리는 문주교님의 복음묵상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나 자신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마태 23, 12 말씀에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겸손의 덕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겸손과 온전한 순명 없이는 예수님의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마르 10,43-44 말씀에서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높아지려 하고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되려고 목엔 깁스를 하고 얼굴은 근엄하여 미소가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천주교에 입교하고 싶어 우리 성당을 찾아오신 분의 첫마디가 천주교는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레지오 단원들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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