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살아계십니까?

2018. 8. 21. 오전 10:34:21

글자
 지금도 살아계십니까?

17세기 영국의 크롬웰 공화정 시절, 록이라는 사람이 대사 자격으로 스웨덴에 파견되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본국의 일이 몹시 위태로워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 되었는데도 그는 몸을 뒤척이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부하가 그의 침실로 찾아와 말했습니다.

대사님, 대사님이 태어나기 전에도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다스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스도 신자인 록은 당연한 듯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부하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대사님, 지금도 하느님께서 살아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즉시 반문했습니다.

여보게, 그러니까 내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 부하가 공손히 제안했습니다. “대사님, 영국 대사로서 하실 수 있는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머지 일은 전부 하느님 손에 맡기시면 어떻겠습니까?”

, 그렇군! 자네 말이 옳네.”

부하의 충언에 감탄하며 대사는 편안히 잠들었습니다. 

오늘 날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자신이 아닌 인간적인 능력과 지식과 지혜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는 개울가로 뿌리를 뻗어 아무리 볕이 따가워도 잎사귀가 무성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줄 곳 열매를 맺습니다.’(예레 17,8)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그 기적 같은 일이 우리 신앙이 아니던가요. 시련과 고통의 파도가 밀어닥쳐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어떤 일이든 전능하신 하느님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렇게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라틴 격언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 담기는 것의 양이 달라진다.”

각자가 하느님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하느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주님을 전지전능하신 절대자로 모시는 사람만이 그분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레지오 마리애라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 그릇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담았을 때 참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그릇은 봉사라는 이름의 그릇입니다. 봉사라는 뜻은 남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함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라는 말씀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봉사에는 레지오 정신인 겸손과 순명, 끊임없는 기도, 인내심, 순결, 지혜, 용기와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할 수 없다는 불평은 결코 하지 않고 주님께 부르시면 ,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강생구속(降生救贖)의 주님께 대한 우리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