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송현신부님 글 인용
인도의 어느 마을에 성당을 새로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봉헌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마더 데레사 수녀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돈은 여기 있습니다. 이 돈은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돈을 보고서는 모두들 비웃었습니다. ‘저걸 가지고 무슨 건축 공사를 한단 말인가?’ 그 돈으로는 벽돌 한 장 사기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수녀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이것은 아주 사소한 동전 한 닢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느님의 능력과 생각을 보테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고, 마침내 오 년 뒤에 그곳에서 성당 축성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인도의 민족 운동을 이끌었던 간디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사회악’을 지적한바 있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상업, 노동 없는 재산,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봉헌과 희생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자기 생명은 물론 자신의 모든 소유물도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또 진정한 감사는 봉헌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느님 앞에 바치는 봉헌은 자신이 받은 바를 그분의 은혜로 돌리는 훌륭한 신앙행위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면 무엇이든 기쁘게 봉헌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 학식과 재산, 그리고 생명까지도 기꺼이 바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중요한 것은 ‘봉헌의 양’이 아니라 ‘봉헌의 질‘입니다. 쓰고 남은 것을 바치느냐, 아니면 가장 우선적으로 바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거나 기도드릴 때 내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하느냐, 아니면 모든 일에 앞서서 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주일 헌금을 내 필요한 곳에 다 쓰고 남은 것을 바치느냐, 아니면 하느님 앞에 제일 먼저 봉헌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내 이웃과 사회, 하느님의 뜻에 마땅한 곳에 봉헌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하느님을 ’거지‘로 전락시키지 말고 내 생명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수백 수천 배로 되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오후 2시경 저는 잘 아는 교우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여명(餘命)이 다해가는 말기 암 환자가 있다면서 대세를 부탁해왔습니다. 저는 몇 가지 조건을 타진(打診)한 후 흔쾌(欣快)히 수락을 했습니다. 그 시간 서울지방의 날씨는 35도로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고 습도 때문에 끈적임이 심하여 거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30분 후 약속 장소에서 만나 대세 희망자가 입원해 있는 안양 a병원을 방문하여 대세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대세자는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기를 희망하고 있었으며, 천주교 4대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마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베푼 다음, 함께 성호경을 긋고 마무리하였습니다.
저는 대세 부탁을 받은 그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대세를 부탁한 교우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그 시간 대세를 주려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연히 가야지요.”였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덥다는 이유로 시간을 미루다가 만일 대세를 원하는 분이 대세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그 책임을 저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저는 봉헌이란 바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아낌없이, 망설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은 관염(觀念)이 아니고 행동(行動)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