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스쿠르테이프 편지’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루이스, 그는 40여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그리스도교 변증론(辯證論 또는 호교론(護敎論)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이혼」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는 지옥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셨다. 시간마다 천국으로 떠나는 직행 버스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정거장에 나온다. 요즘은 공짜라서 누구나 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뜻 올라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만 할 뿐이다. 그들은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 꼴로 천국 정거장에 꼭 들른다. 매번 그들은 그냥 구경만 하면서 서성거리다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스도인은 매주일 성당에 모여 천국행 버스를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막상 차가 떠날 때면 아무도 올라타지 않습니다. 여전히 두려워하고 망설이면서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아직은 살기도 빠듯하고 할 일도 많아 버스를 타고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형편이 나아지고 시간이 나면 그때 가서 보자고 합니다. 그동안 멀찍이 앉아서 구경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괜히 마음을 괴롭히고 싶지도 않습니다. 실상 출발할 용기가 없는 자는 이미 포기한 사람입니다. 천국을 꿈꾸는 것은 ‘뇌’가 하고, 성경을 넘기는 것은 ‘손’이 하고, 성당으로 향하는 것은 ‘발’이 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모두를 움직이는 의지의 힘이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신앙적 용기’입니다.
독일의 동화 집성가(童話集成家) 그림(grimm)의 말처럼, 행복은 신과 함께 있는 것이고 거기에 미치는 힘은 영혼의 올림인 ‘용기’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의 신분이나 죄가 아니라 주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두려움과 망설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천국행 버스를 멀리서 바라보며 구경만 할 겁니까/ 더 이상 자신을 구경꾼으로 만들지 맙시다. 더 이상 생물학적인 요구에만 급급해서 살지 맙시다. 마냥 ‘내일’만 쳐다보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합시다.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직을 수락하면서 현대인을 향해 힘차게 외쳤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해 문을 활짝 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참된 생명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송현 신부)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통해 제자들에게 행동으로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으나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십니다. 그러나 요한은 오히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의로움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시면 세례를 청하십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당신과 함께 하느님 사업에 동행할 제자들을 직접 찾아 나서시는 모습도 봅니다(마태 4,18-22).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렇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신 다음,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라’(요한 12,2-12) 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라고 천국행 버스 티켓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행 버스 티켓을 미리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네!‘하고 큰소리로 응답(應答)을 하며 기쁘게 천국행 버스에 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