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겸손을 따릅시다.
인도의 힌두교 학자가 강을 건너려고 나루터로 나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나직하게 떠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으나, 늙은 뱃사공은 세 명의 힌두교 학자를 싣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 중 한 학자가가 뱃사공에게 물었다.
“천문학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나는 평생 노만 저었기 때문에 모릅니다.”
“허, 당신은 대부분 생을 헛살았군요.”
조금 있다가 다른 학자가 철학을 아느냐고 물었다. 노인의 대답은 역시 똑같았다.
“허, 당신은 반평생을 잃었군요.”
세 번째 학자가 물었다.
“그러면 힌두교 경전이나 심리학 그리고 생물학 따위도 모르겠군요?”
노인은 짜증스럽다는 듯이 모른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그 학자는 불쌍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이때, 갑자기 세찬 비바람이 불어 그 나룻배를 뒤집어 놓았다. 세 학자가 사람 살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그 노인 뱃사공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들은 아는 것이 많은데, 그동안 수영도 못 배웠소? 참 딱하기도 하셔라. 그렇다면 당신들은 생의 전부를 잃었군요!”
이렇게 말한 그는 그들을 구해준 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잘난 지식은 당신들 자신도 구하지 못했으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당신들의 생의 전부를 걸 그런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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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거품 같은 세상의 온갖 지식과 소유에 집착하여 소중한 생을 소모하고 산다.
우리가 진정 기울여야할 생의 관심은 우리 영혼의 부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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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시인 고진하의 ‘아주 특별한 1분’에서 옮긴 글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겸손치 못한 세 명의 힌두교 학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머릿속에 지식은 가득 들었을망정 겸손을 알지 못하면 거짓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남을 존경해야 존경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남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겸손한 마음으로 가브리엘천사의 말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루카 (1,26-38)
우리는 ‘레지오 단원 선서’를 하면서 성령님과 성모님 앞에서, ‘레지오의 선서문’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선서문의 말미에는
“오늘 저는, 당신께서 저를 받아 주시고 저를 써 주시며 저의 나약함을 굳센 힘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확실히 믿으며 다짐하나이다.
저는 감히 레지오 대열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충실하게 봉사하겠나이다.
이 규율은 동료 단원들과 저를 하나로 묶어 군단을 이루도록 하며, 또한 성모님과 함께 진군하는 우리의 대열을 가다듬어, 당신의 뜻을 이루고 은총의 기적을 일으키게 하겠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땅의 얼굴은 새롭게 되고 온 누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펼쳐지게 될 것이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신앙고백을 하신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도록 합시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말씀을 전하는 우리 레지오 단원이 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