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
에스파니아 전쟁 때 쿠바에 진주한 미국 기병대 지휘관은 훗날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였습니다. 전쟁 중에 식량이 부족해 곤란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마침 민간 의료봉사대에서 보내온 식량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책임자는 후에 미국의 ‘백의의 천사’로 유명해진 ‘바턴’이었습니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루즈베트 대통령은 직접 교섭에 나섰습니다.
“식량 일부를 파십시오. 가격은 좀 비싸도 괜찮습니다.”
그러자 바턴은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의료 봉사를 한다면서 부상병들이 굶어 영양실조가 되어도 좋다는 말이오?”
바턴은 미소를 띠고 말했습니다.
“팔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냥 달라고 부탁해보십시오.”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때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그런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군요. 당신의 친절과 사랑을 믿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십시오.”
사람들은 세상이 갈수록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느 일간지에, 어느 할머니는 6.25 전쟁 때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 평생 혼자서 살며 모은 돈 수십억 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정치면의 다음 장에 실린 할머니의 말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덜 먹고, 덜 입고해서 힘들게 모았지만, 죽어서 짊어지고 갈 순 없지요. 공부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쓴다면 언젠가 그들도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지요.”
사람들은 흔히 돈이면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본다면 살 수 있는 건 고작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머지 99%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이 차지하는 것이지요. 고작 1%에 불과한 것을 모든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순수한 마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주일 복음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 친구의 자격이 무조건적인 친구가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2-14)
얼마 전 우리 본당을 방문하셨던 박 테오도라 수녀님께서 오늘 감사의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박 테오도라 수녀님께서는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실상을 설명해주시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하셨을 줄로 압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백의의 천사‘바턴’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식량을 팔지는 않겠지만 무상으로 제공할 수는 있다고 한 말을 우리는 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 그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수십억의 장학금을 기부하신 할머님의 말씀, “덜 먹고, 덜 입고해서 힘들게 모았지만, 죽어서 짊어지고 갈 순 없지요.”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