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관대함
나이가 지긋한 선비 한 사람이 노새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다. 선비의 차림은 몹시 검소했고, 거느린 하인 이라곤 노새를 끄는 마부 한 사람 뿐이었다. 먼 길을 온 듯 마부도 퍽 피곤해 보였다.
날이 저물자 선비는 주막집을 찾았고, 제일 깨끗한 방을 하나 빌려 피곤한 몸을 뉘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 무렵 주막 앞이 떠들썩해지더니, ‘충청수사(忠靑水使) 행차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충청수사와 그를 호위하는 관리들이 선비가 묵고 있는 주막집에 들이닥쳤다.
주막집 주인은 허둥지둥 달려나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한 관리가, ‘이 집에서 제일 좋은 방으로 수사님을 모시도록 하라.’ 하고 주인에게 명령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더듬거리며 말하였다.
“저어, 그 방엔 벌써 손님이 들어 계십니다.”
그 말에 관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사님 행차신데 손님은 무슨 손님이냐? 잔말 말고 어서 그 방을 비워라.”
결국 선비가 들었던 방에는 충청 수사가 들었고, 나머지 방들도 모두 관리들이 차 있었다. 선비는 묵을 방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관리들이 든 방 중의 어느 방 윗목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선비의 얼굴에는 노여운 빛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선비는 효종 임금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이조판서에 부임하기 위해 한양으로 가고 있는 우암 송시열이었다.
인간의 행실은 각자가 자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괴태-
이 짤막한 글을 읽고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나였다면, 내가 우암선생님처럼 높은 관직(이조판서)에 명을 받고 한양을 향해 가고 있었다면 일개 충청수사의 무리들에게 아무 부담 없이 방을 내어줄 수 있었겠는가? 그러고서도 노여운 마음도 없이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조그마한 이해 관계에서도 서로 밀리지 않으려고 힘 겨루기를 합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마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책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글을 읽었었습니다. 생각은 쉬운데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단, 한 가지라도 내 이웃을 위해 마음을 비우는 일을 실천에 옮겼으면 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