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고통인가요?
노르웨이에 한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이 좋은 어부가 되기를 바라며 고기 잡는 법도 가르칠 겸 아들을 데리고 자주 바다에 나갔습니다. 어느 화장한 봄날 여느 때와 같이 세 부자는 낚시 준비를 챙기도 어머니는 정성껏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어부의 아내는 선창까지 나가서 세 부자를 배웅했습니다. 한 참 즐겁게 낚시를 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은 얼마 후, 맑은 날씨가 갑자기 음산해지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세 부자는 육지를 향해 쉴새 없이 노를 저었지만, 그들이 탄 조그만 배는 계속 곤두박질하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맹렬히 배를 때리는 파도와 싸우는 그들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밤이 찾아오고, 그들의 마음 속에서도 절망의 어둠이 밀려왔습니다.
아버지는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구나” 하며 노를 젓기를 포기했습니다. 방향을 알지 못하기에 반대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 아들이 “아버지, 저쪽이에요. 저기 점점 커지는 불기둥을 보세요. 우리는 살았어요.” 하고 외쳤습니다. 방향을 잡은 부자는 희망을 품고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었습니다.
가까스로 포구에 도착한 세 부자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환성을 지르고 달려와야 할 어부의 아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 왔는데 당신은 기쁘지 않소?” 하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말에 그녀는 울먹이면서 “여보, 오는 저녁 때 저의 부주의로 부엌에서 불이 나 우리집이 다 타버렸어요. 저만 이렇게 살아 남았어요. 여보, 미안해요.” 그 순간 어부의 입에서는 “아하” 하는 탄성과 함께 “그러니까 그 불이 우리집이 타는 불기둥이었구나,
그러나 그 불기둥 때문에 우리 세 부자가 살아난 걸. 여보, 우리가 방향을 잡지 못해 파도 속에서 몇 시간을 이리저리 밀리면서 난파 직전에 있었는데 불기둥을 보았지. 우리는 불을 보고 노를 저었다오. 그래서 살아온 거요. 너무 상심 마오.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 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 라고 아내를 위로하였습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무엇이 고통인가요? 폭풍이 밀려온 것인가요 아니면 집이 불탄 것인가요? 결국 고통은 우리 자신이 구분 짓는 생각에서 만들어집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똑같은 불기둥이 한 쪽에서는 재앙의 불기둥이 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생명의 불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느쪽에서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재앙으로 생각했던 일이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의 장래를 위해서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바다로 나갑니다. 두 아들도 아버지의 말씀에 거절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나섭니다. 어머니는 바다에 나가는 이들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합니다.
한 가족이 보름달처럼 사랑으로 뭉칩니다. 꼭 성 가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신부님 강론 말씀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소수의 의견이라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까페 가족 여러분! 행복하세요!

02.누군가 널 위하여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