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장 행복합니까?
(송현신부님 글)
이탈리아 시인 타소(T.Tasso;1544-1595)가 한번은 영국의 찰스 왕을 방문했습니다. 두 사람은 문학과 인생 전반에 걸쳐 즐거운 대화를 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던 중에 왕이 불쑥 시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오?”
신앙심이 돈독했던 시인은 즉각 대답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가장 행복하시지요!”
이 대답에 왕도 맞장구를 치며 다시금 물었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러면 하느님 다음으로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오?”
왕은 자신이 거명될 거라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인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습니다.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분명히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시인의 말은 옳았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느님이 가장 행복하다면 그분과 같아지려는 사람이 하느님 다음으로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교 신앙은 처음부터 하느님처럼 되는 비법을 간직해왔습니다.
그 놀랍고도 신비로운 방법은 그분이 인간이 되어 오신 강생(降生) 사건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무한히 낮추신 결과였습니다. 성당에 나온 지 수십 년이 되었어도 하느님은 여전히 저 멀리 계십니까.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그분의 존재를 가슴 깊이 느끼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너무도 높은 곳에 올라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저 아래 계신데도 말입니다. 오만하게 올라가려는 내가 지극히 낮은 곳에 계신 그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웃 앞에 낮추지 않는 한, 결코 하느님과 같아질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한, 구원에 이룰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L.N.Tolstoi)의 말대로 겸손한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떠나 가장 힘센 하느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도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비워 가장 행복한 하느님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하느님처럼 영원한 행복을 향유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그분과 같아져야 합니다. 그분처럼 자신을 무한히 낮추어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가족에게 낮추고 이웃에게 낮추고 주님 앞에 낮추어야 합니다. 바로 이 방법으로 하느님은 인간 구원을 성취하셨고, 이제는 인간이 그분께로 올라가는 ‘구원의 코드’가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