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아름답다 -차동엽-

2009. 8. 29. 오후 10:48:04

글자
고통은 아름답다   -차동엽-
 
필자가 언젠가 조경 전문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야, 저 소나무 굉장히 멋있다. 아주 멋지다’ 해서 정원에 가져다 심는 나무들은 하나 같이 비 정상적으로 발육된 나무란다. 그러니까 병에 걸려 뒤틀린 나무들인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건강하게 곧게 쑥쑥 자란 나무들은 잘라서 건축물의 재료들로만 쓰는데, 병들고 풍파 겪은 나무들은 우리가 보고 ‘아름답다!’라며 찬탄을 하는 것이다.
 
고가(高價)의 나무들은 시쳇말로 기형들이다. 바위틈에서 그늘에서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느라 몸이 굽고 뒤틀려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오묘한 멋스러움에 더 환호한다.
 
왜 인간은 소위 그런 ‘기형 소나무’에 끌리는 것일까? 인간 안에는 역경을 극복한 것에 대한 천부적인 눈()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의 의지로 살아남은 영웅을 그리워하는 본능의 발로로서, 자신들의 거실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그것들을 두고 보기 좋아하는 것이다. 이 눈으로 우리 주변을 바라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르긴 몰라도 하느님께서는 늘 그러한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계실 것이다. 말쑥하게 불편 없이 잘 자란 사람은 하느님 눈에는 별로다.
 
고통과 역경을 이겨낸 이들, 그 가운데를 헤쳐나간 이들에게 훨씬 더 큰 매력을 느끼시지 않을까. 그리하여 손 마디가 울퉁불퉁하여 인생의 연륜이 배어 있고, 다리도 고생하면서 휘고, 허리도 구부정해진 사람을 보면서 하느님은 ‘와, 저거 작품인데’ 하시지 않을까.
 
주변을 보면 사람은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건강의 악화, 인간 관계의 갈등, 학업의 부진, 사업의 실패 등 고통의 유형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쉽게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이제 깨달아야 한다. 고통이 절망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고통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며 때로는 ‘소나무’의 예에서처럼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통은 ‘지혜’라는 결실을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베를린의 막스 플랑크 교육 연구소가 15년 동안 1천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끝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밝혀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이나 고난을 극복한 경험이 있었다. 인생의 쓴 맛을 본 사람들이 순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는 또한 똑 같은 상황에서 삶의 태도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아냈다. 동일한 조건에서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은 지혜의 빛을 발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던 반면, 고집이 세고 괴팍한 사람들은 오히려 지혜와 신용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있다. 정약용은 서학(西學)을 받아들인 죄목으로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20여 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 외롭고 모진 유형의 기간을 가난한 농민과 어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몸소 체험하며 글로 남길 수 있던 기회이자 자신의 사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자칫 한바탕 원망으로 보내기 쉬운 시련을 다산은 학문을 공고히 하고 사상을 꽃피워 궁극에는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하는 절호의 기회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그렇다. 고난에서 삶의 지혜가 생긴다. 그리고 고난을 잘 활용하면 일취월장의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 혹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바로 이 시기가 지혜가 성장하는 시기, 곧 생존의 내공을 쌓는 시기라고 여기자.

댓글 1

  • 2009년 9월 8일 오후 8:30

    신부님께서 병자방문을 갔는데 어머니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38살된 아들을 간호하고있기에 신부님께서 힘드셨겠습니다. 했더니 어머니 말씀 저 자식이 제겐 축복입니다. 하셨대요 신부님께서 속으로 깜짝놀라셨다고 해요 모든걸 초월하신 그어머니에게 주님의 특은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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