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사람의 눈은 두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 개이다. 육신의 눈이 두 개요, 나머지 두 개는 마음의 눈이다. 육신의 눈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은 마음의 눈이 더 밝아야 한다. 그 가치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거니와 비교 할 수도 없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버나드쇼가 어느 날, 로댕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데생 작품 하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은 최근에 구한 로댕의 작품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 다퉈 혹평하기 시작했다.
“아, 이것은 로뎅이 아니라 밀켈란제로의 작품인데 제가 착각을 좀 했군요…….”
쇼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계면쩍어 하면서 말했다.
“어쩐지!”
마음의 눈을 감으면 진실을 볼 수 없고,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조건 자신의 잣대대로 재단하려 하지 말고, 마음의 눈을 뜨고 진실과 진리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 개의 ‘육체의 눈’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단 한 개의 ‘영혼의 눈’이다.
진실은 영혼의 누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
우리들은 남의 말을 곧잘 합니다. 말을 하면 주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얘기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칭찬 보다는 뭔가 티를 잡아내어 얘기가 시작 됩니다. 그리고 말이 거듭 될수록 그 이름에 난도질을 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데도 누구 하나 그 말에 제동을 걸지 않습니다. 오히려 합세를 하여 아주 가루를 만듭니다. 내가 남의 험담을 하면 남도 분명 나의 험담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사람도 나름대로 무언가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를 심판대에 올리기 전에 그를 다시 한 번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보았으면 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살펴 볼 때 분명 그는 내 형제 자매요, 내 이웃입니다. 그도 무언가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상처를 입게 되면 그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똑 같은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써, 말을 할 때나 복음 나누기를 할 때 성경 말씀을 자주 응용합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그 좋은 말씀은 공연불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우리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서로 힘을 모아 새로운 하느님의 집(성당)을 지었습니다.
어렵게 성당을 지을 때는 그렇게 힘들었어도 모두 힘을 모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한 형제 자매로 함께 했습니다.
성당을 지을 때의 땀, 기도, 사랑을 한층 승화시켜 우리 모두를 격려하고 서로 마음껏 사랑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육체의 눈으로 형제 자매를 바라보지 맙시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원수(怨讐)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원수(怨讐)가 있나요? 그건 아니죠. 서로를 영의 눈으로 바라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말로만의 신앙인이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오늘 이 시간부터 상대방의 칭찬거리를 찾아 내 옆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진정한 마음으로 칭찬만을 아끼지 맙시다. 남을 칭찬하는 것도 훈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힘든 훈련이 아니고 아름다운 훈련입니다. 오늘 10월의 마지막 화요일 이른 새벽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겠다고 하시네요.
주님께서 언제라도 우리를 사랑의 도구로 쓰실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형제 자매님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