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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을 피하여 요나가
줄행랑을 친 이유가 오늘 독서에서 밝혀집니다.
“아, 주님!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탈출 34,6-7에서 이미 선포된 그분의 이름이며 속성이기도 합니다.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수도이고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인데,
원수인 니네베에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싫어서
요나는 그분께 화를 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요나서는
에즈라 시대에 유배에서 돌아와 너무 자신들에게만 갇혀 살던
유다교의 경향을 비판하는 예언서로 평가됩니다.
예언자는 우선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를 확신한
사람으로서, 통상적으로 악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방인들에 대하여 모두 배타적인 분위기였기에,
예언자 혼자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을 역설하게 되면 시대를
역행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어
이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죠.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지만, 벌레 하나가 아주까리를 쏠아 먹어 시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해가 떠오르고 뜨거운 동풍이 불어오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합니다.
물론 익살스러운 표현입니다만, 아주까리 때문에 투덜거리는 요나와,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살고 있는 니네베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며 훌륭한 묵상 내용이지요.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용서는 서로 닮아서 나란히 갑니다.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아서서 사는 것을 바라시는
(에제 33,11 참조)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마음을 깨달을 때,
우리도 그 하느님께 배운 자비와 용서를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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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로사리오의 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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