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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와 율법 교사의 모습이 똑같아 보입니다.
율법 교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려고 지켜야 할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율법 교사였습니다.
분명 그가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먼저 ‘이웃’의 범위를 제한하려고 합니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본디 레위 19,18에서 ‘이웃’은
이스라엘 동족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요나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피하여 도망치는 이유가 나오지 않지만, 모레 독서에서 밝혀집니다.
요나는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용서하실 줄을 알았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시리아의 니네베 사람들에게
그 용서가 주어지는 것이 싫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지 않고 멀리 도망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의 이웃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힘닿는 데까지 무조건 이웃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시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마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추상적이거나
아주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 안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해나 달이나 별을 따다 주어도
자기가 베푼 것은 아주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과묵하고 고독한 사람으로 소개되는 반면, 선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요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잡신을 믿는 다른 사람들은 배 위에서 폭풍과 힘겹게 싸우면서
자기 신의 뜻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지만, 정통 신앙인 요나는
하느님의 뜻에 여전히 반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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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내가 있단다 / 살레시오 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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