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보아야만 믿느냐?

2007. 5. 15. 오후 11:46:19

글자
 

                   너는 나를 보아야만 믿느냐?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셔서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제일 먼저 일곱 여자를 쫒아주신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먼저 나타나셨고, 그 여자는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 주었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열한 제자가 다 모여 있을 때 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며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지 않고 있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토마사도였습니다.

토마사도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주님을 뵈었다고 말하는데 도마사도만 펄쩍 뛰며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 하겠소”

정말 도마 사도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토마 사도는 주님을 믿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모두에게 나타나셨는데 자신에게만 나타나시지 않아서 더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 뵈자마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며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주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가장 믿음이 깊다고 하던 베드로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밖에 고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사도는 4000년 이상 유일신만을 인정하던 시대에 과감하게 같은 하느님으로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도마는 이미 주님을 만나면 해야 할 신앙고백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토마사도처럼 주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뵙고 싶어 할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주님을 믿지 못해서 주님을 뵙고 싶어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도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아야만 믿겠느냐?  정말 보지 않고 믿지 못하겠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 눈으로 하느님을 뵌다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주님을 체험하였지만 그들은 주님께 온전히 의지했습니까?  반항하고 배반하고 에집트로 되돌아가려 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30년동안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하느님으로 알아보고 믿었던가요? - 십자가에 못 밖아 죽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믿겠죠! 그러나 그 믿음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겠습니까?

  
   눈으로 보여지는 신앙, 감각으로 느끼려는 신앙은 깊어지지 않습니다.

보아야만 믿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학문일 것입니다.

주님을 뵙는다고 우리의 신앙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신비입니다. 주님은 감각의 세계가 아니라 영의 세계에서 만날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영이 육체에 쌓여 있어 주님을 희미하게 보지만 우리가 주님을 믿고 열심히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나라에 가는 날 바로 그 곳에서 주님을 온전히 뵙게 될 것입니다.

정 보고 싶으면, 정 느끼고 싶으면 교회에 온전히 투신하십시요.

영혼의 눈을 좀더 크게 뜰 수 있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교회를 바라보십시요.

주님은 교회안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안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체성사 안에, 고백성사 안에, 세례성사 안에, 혼인성사 안에서..

언제든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이주일의 말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