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좋다 평화롭다.
인공적으로 잘 가꾸어진 도시보다
자연이 좋은 것은 함께 어우러져 살기 때문이다.
하나만 살리려고 할 때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감돈다.
하나만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함께 어우러져 살 때가 더 평화로운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하신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힘의 논리인 것 같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듯이 힘센 놈이 무리를 평정할때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힘센 놈이 약해지면 서서히 또다른 놈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 혼란이 다가 오지만
더 힘센 놈이 평정하면 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사람의 세계나 국가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힘센 자가 사회를 지배하니 마치 세상이 평화로운 것 처럼 보인다.
어렸을때 형과 가끔 싸웠다. 아버지는 전봇대에 붙들어 매셨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졌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다르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마치 가족의 평화와 같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온 세상이 하나의 가족이 되는 평화이다.
서로가 용서하고 서로가 도와 주고 서로가 사랑함으로서 얻어지는 평화이다.
이사야서의 11장 의 말씀대로
늑대가 새끼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딩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딩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없이 손을 넣으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초대 교회 신자 공동체처럼
자신만 혼자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서로 내어 놓고 쓰며 하나의 가족처럼 살았기에 그들 가운데에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천주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맛보았다.
당시 빈부의 격차, 양반과 상민등 엄청난 차별이 있었는데
천주교를 받아들인 양반들이 주님이 주신 평화를 그 땅에 심고 있었다.
하느님 앞에 모두가 형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할 것없이 모두가 형제였기에 교형 자매라고 불렀던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신다고 하였다.
오늘 하루, 아니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 한 형제로서 서로가 친교하며
어려운 형제들을 도우고 소외된 형제들과 함께하고, 기뻐하는 형제와 함께 기뻐하며
하느님이 주신 은총과 평화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