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할 사람일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역대기를 공부하고 읽어나가는데 역대기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느님과의 신앙의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에서 충실하면 이스라엘은 복을 받아 나라가 평온해 지고,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외면하고 우상숭배를 하면 외세의 침략이나 전염병이나 다른 악한 것들로 벌을 받고, 다시 회개하면 하느님께서 평온과 축복을 되찾아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들만의 하느님, 그 민족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자손손 그 하느님을 믿고 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부딛치는 큰 문제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소개하면서 저 세상의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고 전하셨습니다. 다시말해서 현세의 하느님과 내세의 하느님을 소개하는 반면에,
그들은 선택된 민족, 세상 안에서의 하느님 앞에서의 삶을 강조하다보니 결국 하느님을 과거와 현재의 하느님, 이 세상에서만 복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귀착시키고 말았습니다. 내세의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에 대한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현세에서만 복을 받고 벌을 받는 기복신앙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다소 역설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셨지만, 내세의 희망이 있기에 지금의 굶주림도 행복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실 몫을 반드시 다 챙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어려운 것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나중으로 미뤄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굳게 신뢰한다면 현세에든 내세에든 우리의 몫을 챙겨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내세의 희망이 있기에 현재의 어려움도 참고 이겨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지금의 불행을 원망하고 살아간다면, 현세에도 내세에서도 더 큰 불행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불행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내세가 없고 이 현세로만 끝난다면 이것은 불행이 아니라 대단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세에서 하느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되는데 지금의 축복을 헛되이 낭비한다면 지금의 배부름이, 기쁨이 오히려 불행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지금의 축복을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면 지금 현세에서도 축복, 내세에서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이이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자신의 축복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눈다면 내세에서는 지금보다 더 큰 행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과거의 하느님, 현재의 하느님 미래의 하느님이십니다.
과거와 현재만의 하느님께만 매달려 과거 이스라엘 백성처럼 현세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지말고, 미래애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며 오늘을 보람있게 살아갑시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1코린15,19.
